도쿄 헬스클럽ㆍ학원가엔 오후 4시 퇴근한 직장인 '북적'

특파원 리포트

日 대지진 後 6개월…일상생활이 된 '절전'

도쿄돔 '롤러코스터' 가동 중단, 낮 시간대 전철 운행 30% 줄여
손님 준 디즈니랜드 첫 적자, 일어학원 외국인 수강생 급감

지난달 25일 일본 도쿄돔. 라이벌 중 라이벌로 불리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한신 타이거스의 일본 프로야구 경기가 열렸다. 접전이 이어진 끝에 9회말 스코어는 3 대 3. 연장전에서 승부가 갈리겠구나 했는데 갑자기 관중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전광판에 '경기시간이 3시간30분을 넘었다'는 자막이 지나갔다.

일본 프로야구가 올 들어 도입한 새 규칙은 '경기 시작 후 3시간30분이 지나면 새 이닝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전기를 아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도쿄돔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던 '롤러코스터'가 멈춰선 것도 같은 이유다. 일본 동북부지역에서 대지진이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일본이 바뀌고 있다. 변화의 파장은 전방위적이다. 의식주 전반의 생활문화가 모두 달라졌다. 방사능 오염에 대한 불안감으로 일본을 찾는 외국인도 크게 줄었다. 소비 패턴이 변함에 따라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도 수정됐다.

◆일상생활로 정착한 '절전'

전력 부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이후 일본인들의 생활은 팍팍해졌다. 건물 실내 온도는 평균 28도 정도로 평년보다 2도 정도 올라갔다. 시원함의 대명사였던 은행도 겨우 더위를 면하는 수준이다. 은행들이 손님을 위해 틀어놓던 TV도 모두 꺼졌다. 도쿄 거리에선 가동이 중단된 전광판이 늘었다. 쇼윈도 조명도 어두워졌다. 낮 시간대 전철 운행 횟수도 평소보다 최대 30%까지 줄었다. 열차 내 온도 역시 평소보다 높다. 원자력발전소 폭발로 전력 공급량이 줄어든 것도 있지만 전기는 무한정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전자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호도 달라졌다. 같은 성능이면 전기를 덜 먹는 제품이 인기다. 일본 최대 전자제품 매장인 '빅 카메라'는 이런 소비자들의 욕구에 발맞춰 매장 한편에 절전 요령을 설명해주는 부스를 따로 마련했다.

◆새로운 마케팅 '애프터4'

지난 5일 도쿄 도요스(豊州)역 인근의 종합쇼핑센터 라라포트.오후 4시가 조금 넘자 2층에 있는 헬스클럽 'DO SPORTS'에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퇴근길에 운동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직장인들이다. 헬스클럽 관계자는 "보통 오후 6시는 지나야 직장인 회원들이 운동을 했는데 요즘은 4시가 좀 지나면 러닝머신이 다 찬다"고 말했다. 낮 시간대에 활동을 늘려 전기 사용량을 줄이자는 차원에서 오전 7시 출근,오후 4시 퇴근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프터4 마케팅'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직장인들을 잡기 위해 음식점 헬스클럽 학원 등 서비스업체들이 각종 할인 혜택 등을 내세우며 마케팅 전쟁을 벌이고 있다. '조기 퇴근'을 한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아예 기업 문화로 정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캐주얼 의류업체 유니클로가 대표적인 케이스.이 회사는 여름철에만 실시하려던 '서머타임(오전 7시 출근,오후 4시 퇴근)'을 상시화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외국인이 줄었어요'

도쿄 이다바시역 인근의 외국인 대상 일본어 학원인 'ALS'.이곳 강사들은 요즘 1주일에 하루씩 돌아가며 휴가를 쓴다. 일본어를 배우려는 외국인 수강생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일본어 강사 후지이 노부코 씨는 "매 학기 180명 정도가 새로 수강신청을 했는데 요즘은 100명도 채 되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8일 도쿄 디즈니랜드의 인기 놀이기구인 '스페이스 마운틴' 매표소 앞.평일 오후인데도 줄이 제법 길어 보였다. 출입구 위에 붙어 있는 전광판에는 '대기시간 40분'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고 불평하거나 짜증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올초까지만 해도 두 시간은 기다려야 했다"고 줄을 서 있던 한 젊은이는 말했다.

외국인을 비롯한 지방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도쿄 디즈니랜드는 지난 2분기(4~6월)에 적자를 기록했다. 분기별로 실적을 공개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첫 적자다. 고육책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태양의 서커스' 공연은 올해 안에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입장권 할인 행사도 이례적으로 가을까지 연장하기로 했지만 회복 시기는 아직 불투명하다. 대지진에 이어 원전 사고까지 겹치면서 일본에서 외국인이 줄어들고 있다. 지난달 일본을 찾은 외국인 입국자 수는 56만17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1% 줄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