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특허전쟁의 한복판…워싱턴의 '천만불짜리 워리어들'

특파원 리포트 - '특허출원 1번지' 워싱턴

'총성 없는 전쟁' 年3000건 육박…1건당 변호사 비용 400만 달러
국내 기업 국제 특허소송 늘어…한국계 변호사들 영입 1순위로

워싱턴 E 스트리트 500에 있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이곳 사건목록에 암호파일처럼 올려진 서류번호 '337-TA-796'엔 낯익은 이름들이 올라와 있었다. 조사 의뢰자가 애플,상대 기업은 삼성전자라고 씌어 있었다. 특허침해 분쟁 대상은 전자 디지털 미디어 장치와 그 부품.최근 전 세계 정보기술(IT)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애플과 삼성 간 특허전쟁은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 워싱턴은 '피가 흐르지 않는 전쟁터'로 불린다. 기업들이 생사를 걸고 싸우는 이곳의 전사들은 특허변호사.워싱턴 E 스트리트 500 등에 진을 치고 있는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특허변호사 2000여명이 미국 연방항소법원이나 ITC를 오가며 매일 날선 공방을 펼치고 있다. ◆글로벌 특허 전쟁터,워싱턴

미국 수도인 워싱턴은 특허출원의 글로벌 1번지이며 특허소송이 발생하는 중심지다. 개인과 기업들이 특허를 출원하는 미 특허상표청(USPTO)이 자리잡고 있다. 특허전문 연방항소법원(CAFC)과 특허소송을 최종 판결하는 대법원,특허분쟁과 무역분쟁을 조사해 의결하는 ITC도 포진해 있다.

지난해 특허상표청에 출원된 특허는 70만건.최근 미국 의회를 통과,50년 만에 대대적으로 개정된 특허법 개혁에 따라 미국에서 출원하는 건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이 선(先 )발명주의를 포기하고 다른 국가들처럼 선(先)등록주의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선등록주의는 특허를 먼저 출원한 사람에게 권리를 주는 시스템이다.

미국에서 제기되는 특허소송은 1년에 몇 건이나 될까. 특허업무지원 전문기업인 렉스 매키나의 조슈아 워커 사장의 대답은 입을 딱 벌어지게 했다. 그는 "2000년 2296건이던 건수가 지난해 23% 늘어난 2833건에 달했다"면서 "올해는 3000건이 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나마 이 수치는 미국 각주에 흩어져 있는 연방법원에 접수된 특허분쟁이다. ITC에 제기된 분쟁 건수도 비슷한 추이를 보인다. 2000년 17건에서 지난해 56건으로 3배 이상 급증했다.

PCT 로펌의 레이먼드 밀리언 회장은 "ITC는 분쟁 해결 기간이 신속하고 패소한 제품의 미국 내 수입과 판매를 금지해 파괴력이 엄청나다"고 전했다. 애플과 삼성이 ITC에서 특허분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다. 2004~2010년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피소되거나 제소한 특허소송 건수는 436건(63.5%)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몸값 26만달러의 대리 전사

미국 특허청에 등록돼 있는 특허변호사(patent attorney)와 변리사(patent agent)는 각각 3만1185명과 1만322명.이 가운데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와 변리사는 모두 1500~2000명에 달한다. 변호사는 소송과 출원 업무를,변리사는 출원 업무만 담당한다. 변리사 시험은 전기공학,생화학 등의 공학과 응용과학 전공자에게 기회를 준다. 특허변호사는 반드시 변리사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한국과는 시스템이 다르다.

워싱턴은 항소법원과 ITC가 위치해 있어 특허변호사들의 능력과 역할이 어느 지역보다 중요하다. 익명을 요구한 로펌의 한 특허변호사는 "ITC 분쟁을 잘 해결하려면 ITC의 전현직 판사들과 친분이 두텁고 이들의 판결 성향을 잘 아는 변호사들이 아무래도 유리하다"고 전했다. 대개 특허소송 1건당 변호사 비용은 적게는 평균 400만달러,많게는 1000만달러에 이른다. 특허소송 단계별로 초기에 3~4명이,판결 단계에서는 10명의 특허변호사들이 달라붙는 경우도 있다. 삼성과 LG 등 한국 기업들은 워싱턴에서 약 10개 로펌과 각각 계약을 맺고 소송전을 치른다는 후문이다.

그런 만큼 워싱턴 특허변호사들의 몸값은 상당하다. 톱 클래스 로펌에서 일하는 특허변호사들의 연봉은 보너스를 합해 중간치가 26만6374달러에 달한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로펌에 입사한 특허변호사는 16만달러 정도를 받는다. 8~10년이 지나면서 실적을 인정 받아 파트너로 승진하면 대우가 크게 좋아진다. 연봉에다 로펌 전체 이익 중 자신의 기여분까지 몇 %씩 나눠갖는 파트너(equity partner)는 특급 변호사다.

◆부상하는 한국계 변호사들

세계 최대 특허전문 로펌으로 평가받는 피네겐의 선우찬호 파트너 변호사.듀폰과 IBM을 거쳐 1988년 피네겐에 합류한 그는 "10년 전 피네겐에서 백인이 아닌 변호사는 드물었으나 지금은 한국계 등 타인종 변호사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어와 영어가 유창하고 능력이 뛰어난 특허변호사들은 삼성과 LG 등 글로벌 한국 기업들의 최우선 영입 대상이다.

워싱턴과 워싱턴 인근의 버지니아주와 매릴랜드주에서 활동하는 재미한인특허변호사협회(KAIPLA · 회장 김주미 변호사) 회원도 50여명이다. 이들은 미주 전지역의 지식재산권 전문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한국 기업들의 특허 출원과 소송 대리업무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대기업들이 특허소송에 휘말리는 것은 글로벌 기업으로 급성장해 경쟁업체들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계 특허변호사들의 위상 변화와 활동이 중요해진 것이다. 선우 변호사는 "미국에서 10위 안에 손꼽히는 최고 특허변호사에 빌 리와 모건 추라는 2명의 중국계 변호사가 항상 포함되는 것은 눈여겨볼 일"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