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업재해 부르는 저가낙찰제

심규범 <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
2005년 기준 치명적 산업재해는 한국의 경우 10만명당 28.6명으로 미국의 2.6배,영국의 7.7배에 이른다. 한국에서는 사망만을 포함하나 다른 나라는 사망 이외의 치명적 중상도 포함시킨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이것이 국격 향상을 도모하는 한국의 산업안전 수준이다.

건설업 사망자는 2009년 전체 사망자 2181명 중 606명으로 27.8%를 차지했고,지난해 전체 사망자 2200명 중 611명으로 역시 27.8%다. 건설업 취업자 수 비중이 7%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1년 365일 내내 하루 평균 1.67명이 건설현장에서 사망한다. 그 원인을 건설현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러 원인 중 근로자와 사업주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사항은 저가 낙찰이다. 건설업은 제조업과 달리 먼저 수주한 뒤 생산이 시작되는 수주생산 방식을 따른다. 건설업체는 생산 기회를 얻기 위해 사활을 걸고 수주 경쟁에 나선다. 특히 최저가낙찰제 하에서는 무모할 정도로 '제 살 깎기'를 감행한다. 2004~2008년 최저가로 발주된 공사의 평균 낙찰률은 65.0%다. 턴키 · 대안 방식의 90.7%와 적격심사 방식의 84.8%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공공공사는 국민의 혈세로 추진되므로 차액이 클수록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문제는 과도한 저가 낙찰이 그 대가로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다는 데 있다.

저가 수주 업체는 이윤을 남기기 위해 주로 노무비를 삭감한다. 거기에 투입 인원을 줄이고 공기를 단축한다. 10명이 적정한 작업 팀을 7~8명으로 축소하고,작업팀 간 성과급 경쟁을 유도해 작업 속도를 높인다. 고임금 고숙련자보다는 저임금 저숙련자를 투입한다. 높은 노동 강도와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기에는 외국인력 특히,불법 체류자가 오히려 제격이다. 숙련도가 낮아지고 의사소통은 더뎌지는데 노동 강도가 커지면 산재 위험은 당연히 높아진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09년 산업재해 발생 건수'는 낮은 낙찰률과 높은 재해율의 연관성을 짐작하게 한다. 100인 이상 건설현장 중 재해율 상위 10%의 산재 다발 사업장의 재해율은 3.15%로 건설공사의 규모별 평균 재해율인 0.08~0.2%에 비해 매우 높다. 산재 다발 사업장에 포함된 공공공사 21건 중 19건이 최저가로 발주된 공사다. 최저가 공사는 2008년에 발주된 공공공사 건수 중 12.7%에 불과하지만 재해율 상위 10%에 포함된 건수 중에서는 90.5%를 차지하고 있다. 과도한 예산 절감의 대가로 생명을 내걸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국격을 운운하기 이전에 국가 운영의 수단인 예산 절감과 근로자의 소중한 생명 간의 뒤바뀐 우선순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