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곁에 두고 싶은 책] 신념 위해 고통 택한 헨델·괴테…"위대한 운명의 순간을 장악하라"

광기와 우연의 역사 /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안인희 옮김 / 휴머니스트 / 335쪽 / 1만3000원
괴테에 따르면 역사란 '신의 신비스러운 작업'이다. 에라스무스,발자크,마젤란 등 불멸의 업적을 이루고도 외롭게 스러져간 인물들에 주목했던 츠바이크의 해석은 보다 구체적이다. 역사는 다름아닌 '광기와 우연의 산물', 곧 개인의 미친듯한 열정과 집념에 믿기 힘든 우연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동로마제국 최후의 보루 비잔틴이 무너진 건 세계의 수도를 차지하겠다고 맹세한 마호메트 2세의 집요함에 마지막 전투 중 누군가 성의 쪽문을 닫지 않은 기막힌 일이 일어나서요,헨델의 '메시아'는 음악의 거인이 생을 포기하기 직전 읽은 이름 없는 시인의 편지 덕이요,대서양 해저케이블은 두 대륙의 소리를 잇겠다는 한 사내의 무한도전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현장을 생중계하는 듯한 특유의 문체는 흥미진진하고,방대한 자료를 기초로 한 내용은 엄청난 양의 지식과 정보를 전달한다. '비평가는 조소하고 관객은 무심했다. 헨델은 점점 더 움츠러들었다. 창작의 물결이 막혔다. 템스강 다리 위에 서서 검게 빛나는 물살을 내려다보곤 했다. 신과 인간에게 버림받았다는 이 고독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헨델의 운명은 그러나 1741년 8월21일 밤 바뀌었다. 구겨서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발로 팍팍 밟았던 제닌스의 시(詩)를 집어들어 읽는 순간 그는 하데스(저승)에서 되살아났다. '위안받으라! 그것은 말이 아니라 신이 주는 답이었다. ' 위대한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그로부터 불과 3주 만인 9월14일 완성됐다.

미국 뉴펀들랜드에서 아일랜드에 이르는 해저케이블 설치에 성공한 사이러스 필드의 얘기는 인간 의지에 한계가 있는 건가란 생각을 갖게 한다. 필드가 대서양에 두 대륙을 잇는 케이블 설치 작업을 시작한 건 1857년 8월5일.첫 시도는 물레에 감긴 전선이 빠져서,1858년 6월의 두 번째 시도는 폭풍 때문에 실패했다. 같은해 8월 작업은 성공한 듯했다. 영국과 미국의 언론은 콜럼버스 이후 최대의 업적이라고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분명하게 들리던 소리는 9월1일 뚝 끊겼다. 환호의 함성은 악의에 찬 분노로 변해 필드를 향했다. 실패한 걸 알았으면서도 모른 척하면서 엄청난 차익을 남기고 주식을 처분했다는 것도 모자라 대서양 전보는 실제 한번도 도달된된 적이 없다는 소문까지 났다.

필드는 하지만 그 모든 비난과 모략에 상관없이 1865년 다시 대들었다 실패하고도 다음해 다섯 번째로 도전,마침내 성공함으로써 인류 역사에 굵고 진한 획을 긋는다. 마호메트 2세,헨델,괴테,나폴레옹,톨스토이,스콧,레닌 등 15~20세기 역사적 인물의 성공과 실패를 다룬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크고 또렷하다.

'기적 혹은 기적 같은 일이 이뤄지려면 먼저 이 기적을 믿는 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후회한다고 잃어버린 순간이 되돌아오진 않는다. 그것은 역사나 한 인간의 삶에서나 마찬가지다. 소홀히 한 1시간은 천년을 주고도 되살 수 없다. '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