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家 재건 나선 현대증권 '글로벌 IB' 속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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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현대증권
순이익 넘버원
3년만에 5계단 끌어올려…140개 지점 '영업망 탄탄'
저축은행 인수도 추진
선발주자 맹추격
ABS 인수·IPO부문 두각…"내년 빅3 투자은행 도약"
증권회사들의 2010회계연도(2010년 4월~2011년 3월) 실적이 나온 지난 6월 말 증권가에서는 현대증권이 단연 화제였다. 291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려 국내 62개 증권사 중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2000년대 들어 위상이 점차 약해져 업계 6위(2007년 순익 기준)까지 밀려났던 현대증권이 불과 3년 만에 순위를 다섯 계단이나 끌어올리며 1위로 올라서자,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현대가 다시 저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대증권은 여세를 몰아 2011회계연도 1분기(2011년 4~6월)에도 911억원의 순이익으로 1위 자리를 지켰다. 현대건설 지분 매각대금 등 1회성 요인을 제외하더라도 이익 규모가 전분기 대비 30%가량 늘었다. 증권사의 전통적인 수익원인 위탁영업은 물론 자산관리 투자은행(IB) 상품운용 등 전 부문의 실적이 고르게 증가했다.현대증권이 ‘명가 재건’의 시동을 걸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직후 ‘바이 코리아(Buy Korea)’ 열풍을 일으켰던 소매영업 부문의 저력을 바탕으로 IB와 자산관리 분야에서도 선발주자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2011년 국내 ‘빅3 투자은행’으로 도약하고, 2020년 글로벌 IB와 경쟁하는 ‘대한민국 대표 IB’로 올라서겠다는 비전을 향해 달음질을 시작했다.
◆IB·자산관리로 수익구조 다변화
증권업계에서는 현대증권이 순이익 1위를 차지한 것보다 수익구조를 다변화한 것이 의미가 크다고 평가한다. 현대증권은 3~4년 전만 해도 영업수익(매출) 중 위탁영업 비중이 70%를 넘었다. 위탁영업은 투자자의 주식거래를 대행하고 수수료를 받는 비교적 손쉬운 수익원이지만, 시장 상황에 좌우되는 단점이 있다. 증시가 활황이면 주식 거래가 많아져 수익이 증가하지만, 시장이 침체에 빠지면 수익이 감소한다. 더구나 증권사 간 수수료 인하 경쟁으로 위탁영업에서 예전만큼 큰 수익을 내기는 어려워졌다.최경수 현대증권 사장은 2008년 4월 취임 직후 수익구조 다변화를 주요 과제로 추진했다. 그 결과 현대증권의 지난해 영업수익 중 위탁영업의 비중은 53.6%로 낮아졌다. 반면 10%대였던 상품운용 부문의 비중은 30%대로 높아졌고, 2~3%에 그쳤던 IB 부문 비중은 5%로 확대됐다. 자산관리 부문 비중은 5%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전년 대비 증감률을 보면 위탁영업 이외 부문의 성장성이 더 두드러진다. 현대증권의 지난해 위탁영업 수익은 3339억원으로 전년 대비 12.4% 감소했지만, IB와 자산관리 부문 수익은 각각 303억원과 331억원으로 24.2%와 24.4% 증가했다. 상품운용 부문 수익도 2258억원으로 15.4% 늘었다.
위탁영업의 경쟁력이 약해진 것은 아니다. 수익 규모와 비중은 줄었지만 시장 점유율은 2008년 이후 2위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증권 관계자는 “업계 최대 수준인 140개 영업점을 바탕으로 한 소매영업 부문의 경쟁력은 살아 있다”며 “증시가 활황기로 돌아서면 위탁영업 실적도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한국형 헤지펀드’ 설립 박차
글로벌 IB로 도약하기 위한 준비도 본격화했다. 현대증권은 지난해 자산유동화증권(ABS) 인수 부문에서 3위에 오르고 한국거래소의 기업공개(IPO) 우수 증권사로 선정되는 등 IB 부문에서도 업계 선두권으로 뛰어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올해 초에는 IB본부를 IB1본부와 IB2본부로 나눠 분야별 전문성을 강화했다. IB1본부는 기업금융 및 구조화금융을 담당하고, IB2본부는 IPO 및 인수·합병(M&A) 등을 맡는다. IB2본부에는 해외사업부를 신설, 해외시장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과 대형 IB 육성을 핵심으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에 따른 시장 변화에도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현대증권은 지난 4월 헤지펀드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했고, 헤지펀드를 지원하는 프라임브로커리지 업무를 위한 전산 시스템도 구축했다.현대증권은 헤지펀드 TF를 자회사 형태로 분사하기로 하고 이르면 오는 12월 금융당국의 인가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또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펀드오브헤지펀드 등 간접투자 형태의 상품을 통해 국내 헤지펀드 고객 기반을 확충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프라임브로커 자격 요건인 ‘자기자본 3조원’을 충족하기 위해 연내 595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키로 했다. 이와 함께 수신 기능을 갖추고 영업망을 확대하기 위해 지난달 영업정지된 대영저축은행 인수를 추진 중이다.
7개국에 걸쳐 있는 해외 영업망은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규모와 역할을 조정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보다는 아시아 등 신흥국에 진출하는 것이 유망하다는 판단에 따라 홍콩 현지법인을 아시아 진출의 핵심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자산관리 강화…거액자산가층 공략
현대증권이 IB 부문과 함께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는 거액자산가 계층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자산관리 부문이다.
현대증권은 지난해 자산관리 브랜드를 ‘QnA’로 통합하고 ‘QnA 파이낸셜 플래닝’, ‘QnA 포트폴리오 매니지먼트’ 등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였다. 금융자산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인 고객에게는 기존 거래 관계가 없어도 금융투자, 부동산, 세무, 상속 및 증여 등에 관한 종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대증권이 2009년 선보인 ‘초이스&케어(choice&care)’는 펀드 판매의 틀을 바꾼 혁신적인 서비스로 평가받는다. ‘초이스&케어’는 고객에게 펀드 상품을 추천하고 판매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매 여부에 관한 상담 등 사후 관리까지 해 주는 서비스다. 출시 4개월 만에 컨설팅 신청 금액 7000억원을 돌파,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현대증권은 지난 13일 자산관리 분야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이날까지 공모한 ‘QnA 주가연계증권(ELS) 1호’가 50억원 모집에 321억2600만원의 청약금액이 몰려 6.48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국내 증권사의 ELS 공모 경쟁률은 일반적으로 1 대 1을 넘지 않는다. 이봉기 WM사업본부장은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작은 지수형 상품과 원금 손실 하한선을 낮춘 상품의 인기가 높았다”며 “사전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고객 선호도에 따라 상품을 개발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