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中企 전봇대를 뽑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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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기업 키우는 독일독일 뒤셀도르프 의료기기전시회에서 최근 겪은 일이다. 이 전시회 프레스룸에 앉아 있는데 한 독일 기자가 들어오면서 "메르켈이 왔네"라고 했다. 옆에 있는 전시회 본부로 가봤다. 과연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그 자리에 와 있었다.
소통 없는 일방 지원 대책
이치구 한경 中企연구소장 rhee@hankyung.com
메르켈 총리는 그곳에서 간단하게 인사말을 한 뒤 주최 측 인사들과 가볍게 악수를 나누더니 금방 사라졌다. "왜 저렇게 조용히 가버리느냐"고 전시회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그는 "참여업체들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순간 이런 상황이 한국에서 일어나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이 비행기로 한 시간이나 걸리는 지방 전문전시회에 참석했는데 저렇게 조용히 사라질까. 요즘 그리스에서 촉발된 유럽 재정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메르켈 총리는 제대로 쉴 틈조차 없을 정도로 바쁘다. 그럼에도 유럽 위기를 안정시킬 수 있는 건 독일뿐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독일이 경제적으로 막강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독일 중소기업의 경쟁력 덕분이다.
독일의 중소기업은 어떻게 해서 지금과 같은 경쟁력을 갖게 됐을까. 그 이유는 독일의 경우 한국이 갖고 있지 않은 특별한 제도를 하나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중소기업경감법'이 그것이다.
이 법은 관료주의적 제도를 제거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독일은 총리 직속으로 중소기업관료주의축소위원회를 두고,전문가로 구성된 법규통제위원회도 운영하고 있다. 독일은 이런 기구를 통해 정부가 중소기업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한다. 한국은 올 들어 1주일에 적어도 2건 이상의 중소기업지원시책이 쏟아져 나왔다. 중소기업청,지식경제부,고용노동부가 제각각 중소기업 지원대책을 내놨다. 한국의 중소기업지원제도는 줄잡아 430가지에 이른다. 세계 어느 나라도 한국보다 중소기업지원정책이 많은 나라는 없다.
그러나 한국의 중소기업지원제도는 오히려 중소기업 성장에 발목을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상공인자금 지원정책을 보자.이 자금을 대출받으려면 먼저 자영업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자영업자가 며칠씩 문을 닫고 교육을 받으러 간다면 그 가게는 망하고 말 것이다.
중소기업 정책자금 지원도 마찬가지다. 사업성이 높은 기업에 돈을 줘야 하는데 여전히 전년도 매출액 기준으로 자금을 빌려준다. 돈 갚을 시기는 미래인데,언제나 과거실적을 보고 돈을 빌려준다. 지원 대상도 마찬가지다. 이미 비제조업이 급팽창하고 있는데도,대부분 정책자금이 공장등록증 제출을 요구한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중소기업들은 정책자금을 구하지 못해 전전 긍긍해왔다. 결국 한국의 소프트웨어산업은 후진국 수준으로 밀려났다. 청년창업지원대책은 부처 간 정책 중복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한국 중소기업정책엔 관료주의가 흘러넘친다. 때문에 지원정책이 오히려 규제정책이 되고 있다. YS정부 때부터 대통령 직속의 중소기업정책심의회라는 기구를 두어 각종 정책을 조정해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기구를 폐지했다. 이때부터 부처별로 중소기업정책이 남발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 부담경감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치구 한경 中企연구소장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