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자유' 빠진 민주주의는 기만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 교수 >
교육과학기술부가 민주주의 대신에 자유민주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역사 교과서 서술지침을 발표하면서 발단이 된 '민주주의냐,자유민주주의이냐'의 논쟁이 한창이다. 핵심 쟁점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요약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자유민주주의는 냉전시대에는 반공주의를 정당화했고,오늘날에는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기 때문에 자유를 빼야 한다는 좌파계열의 주장이다. 자유를 빼도 문제가 없는가?주지하다시피 민주주의의 적(敵)은 권위주의요,자유주의의 적은 전체주의이다. 따라서 자유와 민주를 빼면 기다리는 것은 사회주의,파시즘,공산주의,북한의 인민민주주의 등과 같이 개인 대신에 국가를 중시하고 계획을 통해서 경제와 사회를 조직하는 '권위적 전체주의'(그림의 좌표 Ⅳ)뿐이다.

자유를 빼고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원래 민주주의의 이상(理想)은 민주주의를 권위주의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자유를 빼면 민주주의는 그 자체 목적이요 무제한적이다. 무제한적 민주주의(unlimited democracy)'가 얼마나 치명적인가는 나치즘,사회민주주의,루스벨트 행정부의 뉴딜정책,무상복지 등 인간을 정부의 노예로 만든 '민주적 전체주의'(그림의 좌표 Ⅲ)의 역사가 또렷하게 말해준다.

자유를 말하지 않고는 인류의 번영은 물론이요 한국사회의 발전도 설명할 수 없다. 맬서스 인구법칙의 극복을 가능하게 한 것,인류를 문명된 사회로 이끈 것,이것은 경제자유와 사유재산제를 기반으로 하는 시장경제였다. 1960년대 1인당 소득 70달러의 빈곤을 극복하고 경제적 위상이 세계의 상위권으로 격상된 한국경제의 번영도 경제활동의 자유와 사유재산제 덕분이었다.

사유재산체제의 수호기능을 톡톡히 해낸 것이 악용되기도 했지만 반공주의였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좌파가 반공을 냉전 사고라고 아무리 비판해도 좋다. 용공은 인류의 파멸을 가져오는 전체주의를 수용하는 것,그래서 자유주의의 첫 번째 임무는 반공이다. 친북좌파가 준동하는 한 더욱 더 반공이 중요하다.

자유를 빼면 민주도 없다. 시장의 자유와 시민적 자유는 민주발전의 선결조건이라는 점을 강조한 인물이 이탈리아의 유명한 정치사상가 보비오(R.Bobbio)가 아니던가. 우리 사회는 경제자유를 누리면서도 정치적 자유가 제한된,그래서 '권위주의적 자본주의'(그림의 좌표 Ⅱ)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비정부기구(NGO) '프리덤 하우스'가 보여주고 있듯이,오늘날 우리 사회는 미국 독일 등 어떤 사회에 못지않게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도 발전했다. 경제자유와 번영의 덕택이라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서도 안 되지만 좌파계열이 주장하는 것처럼,민주주의가 무제한이어서도 안 된다. 다수의 권력을 제한하지 않으면,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헌법적으로 제한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그림의 좌표 Ⅰ)이다.

결론적으로, 시민들이 번영을 누리면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서도 안 되고 민주주의가 무제한이어서도 안 된다. 이 같은 자유민주주의 버전이 제헌헌법 이래 성문헌법의 해석과 적용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 대한민국의 '불문헌법'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그래도 오늘날 한국사회가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그 같은 헌정질서(憲政秩序) 덕택이다.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