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정유사 '팔 비틀기' 언제까지

윤정현 산업부 기자 hit@hankyung.com
지난 15일 마감된 알뜰주유소 공급자 입찰이 유찰됐다.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정유3사가 참여했지만 정부가 원하는 가격과는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입찰의 모양새를 띠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가격 경쟁이 되진 않았다.

입찰 공고 후 마감까지는 12일이 걸렸지만 마감 후 유찰이 결정되는 데는 3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정부가 원하는 선이 명확했고,정유사들이 써낸 입찰가와 차이가 컸다. 지식경제부는 이날 바로 2차 입찰을 예고했다. 지경부 관계자는 "입찰을 계속 진행해 알뜰주유소에 휘발유를 공급할 국내 정유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발언으로 촉발된 정부의 압력에 결국 정유사들이 'ℓ당 100원씩 할인'으로 무릎을 꿇은 상반기 상황이 재현되는 분위기다. 정부 관계자가 1차 입찰이 유찰된 이후 곧바로 2,3차 입찰을 예고한 것도 어떻게든 원하는 가격을 끌어내겠다는 '독한 의지'의 표현이다. 일각에서 "이미 원하는 가격을 다 정해놓았는데 입찰이 무슨 의미가 있냐"며 "결국엔 입찰과 유찰을 반복하면서 정유사들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여갈 텐데 누가 희생양이 될지 모른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정부는 2015년까지 알뜰주유소 1300개라는 숫자를 목표로 내걸었다. 그러나 상반기 3개월간 ℓ당 100원 인하의 충격이 컸던 만큼 재입찰이 계속돼도 정부가 만족할 만한 가격을 제시할 정유사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실제 현대오일뱅크는 입찰 불참을 선언하며 "한 적도 없는 담합 때문에 1000억원 과징금을 내고 상반기 ℓ당 100원 할인으로 1000억원의 손실을 봤다"고 항변했다.

기한과 규모를 정해놓고 무조건 틀에 맞출 것이 아니라 알뜰주유소의 가격 인하 방식이나 효과,기존 주유소와의 형평성 문제까지 입체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일본 등 인근 지역에서 석유제품을 수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 경우에도 선심성 대책을 넘어 현실성을 가지려면 물류비용을 얼마나 낮춰 기름값에 반영시킬 수 있는지,수입이 가능하도록 환경기준 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부터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기름값이 높다고 흥분하기에 앞서 냉정한 분석이 선행돼야 할 때다.

윤정현 산업부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