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FTA 이제부터다…1. 생산자 아닌 소비자가 개방효과 체감하게

칠레와인 되올랐다는 식으로는 실패…수출만 강조하니 도시서민 냉소할 밖에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최루탄 속에서 4년 반 만에 국회 비준을 통과했다. 경제 영토가 세계의 60%로 확장됐고, 통상 허브로 우뚝 서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FTA가 한국 경제에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해야할 일이 오히려 더 많다.

그동안 찬성 측은 긍정적 효과만 강조해왔고 반대 측은 미국 자본 운운하는 가공의 공포감만 조장해왔다. 오로지 생산자에게만 초점을 맞춰,수출 기업의 득(得)과 농어민의 실(失)만 내세웠을 뿐이다. 정작 FTA의 수혜를 누려야 할 전체 국민,다시 말해 소비자 후생에 대해서는 심도있는 검토가 전무했다. 소수의 수출 대기업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FTA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식의 일부 정서가 생겨났던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 간 무역이 늘어날수록 후생이 증대된다는 사실은 경제원론 수준의 상식이다. 한국의 무역규모는 올해 1조달러를 돌파해 세계 9위(수출은 7위)로 올라선다. 그만큼 FTA가 필수적인 나라다. 그러나 FTA는 곧 수출이란 식이어서는 반쪽 FTA 신세를 면할 수 없다. 한국 대기업들의 경쟁력은 이미 글로벌 수준이어서 수출은 서서히 늘어날 것이다. FTA의 진정한 성공은 수출이 아니라 오히려 수입이다. 값싸고 품질 좋은 물건들이 수입되면서 국내 물가가 내려가고 소비자들이 그 효과를 만끽할 수 있어야 한다.

한 · 미 FTA를 둘러싸고 괴담이 난무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가 횡행해왔다. 이는 미국에 앞서 맺었던 FTA의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칠레 와인이다. 칠레와의 FTA로 2009년부터 15%의 관세가 철폐됐음에도 와인값은 되레 올랐다. 칠레에서 7.5달러(약 8400원)인 몬테스 알파가 수입상 · 도매상 · 소매상을 거치면서 국내 소비자에겐 세계에서 가장 비싼 4만4000원에 팔린다. 소비자들은 뒤통수를 맞은 꼴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유통구조를 혁신하지 않고는 미국산 과일 삼겹살 와인 등의 가격이 내린다고 결코 장담할 수 없다. 소비자 후생이 10년간 321억9000만달러 증대될 것이란 정부 추계는 공허한 숫자놀음이다. 낙후된 유통구조에선 FTA 효과가 반감되는 것은 물론, 하나마나한 FTA가 되거나 나아가 반(反)FTA를 조장할 수도 있다.

유통의 후진성은 대외개방에 걸맞게 내수시장을 혁신하는 작업을 소홀히 한 결과다. 정부의 유통정책은 오히려 철저하게 거꾸로 갔다. 동반이니 상생 같은 허울 아래 SSM(슈퍼슈퍼마켓) 출점을 제한하고 통큰치킨을 금지하면서 소비자 후생은 안중에도 없었다. 농업도 경쟁력 제고가 아니라 피해보전으로 격하돼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도 달라진 게 없다. 더구나 농민 못지 않게 절박한 이들은 도시 서민이다. 전체의 20%인 소득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20만9000원에 불과하다. 서민들이 무역 개방 효과를 피부로 느끼게 하라. 그것에 성패가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