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국세청'ㆍ과자 '지경부'ㆍ우유 '농식품부'…모든 부처가 '물가단속반'?

풀무원 등 잇단 인상 번복…공정위는 전품목에 개입
연말 식품업계의 최대 화젯거리는 최근 잇따라 터진 식품업체들의 ‘가격 인상 철회’ 소동이다. 전례가 없었던 데다 반나절 만에 가격 인상 방침을 유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풀무원이 그랬다. 지난 22일 오전 두부 콩나물 등 10개 품목 153개 제품의 가격을 평균 7% 인상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가 7시간 만에 철회했다. 가격인상 발표 때 내걸었던 ‘원가 부담이 견디기 힘든 지경’이라는 이유는 ‘서민경제 부담 완화와 설 물가 안정에 기여하기 위한 것’으로 바뀌었다.

오비맥주는 지난달과 이달 연이어 가격 인상 계획을 밝혔다가 스스로 철회하는 촌극을 벌였다. 롯데칠성음료도 지난달 중순 음료 가격을 올렸다가 열흘 만에 사이다 펩시콜라 등 주요 제품값 인상을 보류했다.이처럼 가격인상 방침을 번복한 것은 정부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품목별 물가관리를 책임지는 정부 부처는 어디일까. 종전 기획재정부 물가정책국에서 담당하던 것이 지금은 전 정부 부처로 확대됐다.

업계에 따르면 농축산물과 가공식품은 올해부터 대부분 농림수산식품부가 담당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원유(原乳·가공 이전 단계의 우유) 가격이 오른 뒤 우윳값 인상 움직임을 보이자 서울우유 등 우유업체 사장과 임원을 불러들인 곳은 농식품부였다. 풀무원 가격 인상을 없었던 일로 되돌린 것도 농식품부였다. 지식경제부가 맡았던 설탕값 관리도 지난달 농식품부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술에 대한 가격관리는 국세청이 맡고 있다. 술값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주세를 국세청이 담당하고 있어서다. 과자 아이스크림 등은 농식품부와 지경부에서 중복적으로 맡는 양상이다. 원칙적으론 농식품부가 담당이지만, 제품에 붙는 권장소비자가격에 대해 지경부가 직접 개입했다. 롯데제과 등 제과업체들은 결국 1년 전의 소비자가격을 그대로 붙이기로 했다. 올해 부활한 권장소비자가격 관련 제도를 지경부가 관할하고 있기 때문이다.품목에 관계없이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곳은 올초 ‘물가 기관’이라고 선언한 공정거래위원회다. 업계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도 크고 직접적이다. 프리미엄 라면으로 출시됐던 농심의 신라면블랙이 국내 사업을 접은 것도 결과적으로 가격을 높게 책정했다는 점을 문제 삼은 공정위에 의해서였다.

식품업체 한 임원은 “이제 개별 품목의 가격이 원가 상승 수준만 올라가더라도 소비자들은 정부가 뭐하고 있냐고 비판하게 될 것"이라며 “정부가 개별 품목의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자승자박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철수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