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의 아젠다, 성공한 리더십] 이념 버리고 '포미 제루' 약속 지켜…국민들 "룰라가 우리다"

신년기획 선택 2012 (1) 룰라 前 브라질 대통령

"배 고프면 아무것도 못한다"
가난한 가정에 현금·식권 지원…4년간 5000만명 절대빈곤 벗어나
집권 2기엔 성장에 무게중심

6년간 직접 연설 1770번
'거리의 언어'로 대중과 만나…2010년 퇴임때 지지율 87%

< 포미 제루(Fome Zero) : 기아 제로 >
1965년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린든 존슨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기간은 1년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되고 난 뒤 아젠다를 만드느라고 허비할 시간이 없다는 얘기였다. ‘공약을 실천하기에도 모자라는 게 임기’라고도 했다. 선거의 해다. 한국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 58개국에서 새 리더를 뽑는 선거가 치러진다. 성공한 국가 지도자들의 아젠다와 리더십을 돌아보고, 성공법칙을 찾아본다.

2003년 1월 어느날 브라질에서 가장 가난한 피아우이주(州)의 한 마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나타났다. 길에는 진흙과 오물이 뒤범벅이고 하수구 냄새가 진동했다. 수십명의 농민과 아이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남자는 그들을 껴안고 입을 맞췄다. 그리고 약속했다. “하루 세 끼 밥을 먹게 해주겠다.” 이 남자는 열흘 전 대통령에 취임한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였다. 이날의 약속은 룰라 집권기 최대의 아젠다가 됐다. 8년은 ‘기아 제로(포미 제루·Fome Zero·브라질 사람이면 누구나 배를 곯고 잠자리에 들어서는 안 된다)’란 약속을 이행하는 기간이었다. 2010년 말 룰라는 퇴임했다. 퇴임 당시 지지율은 87%였다.

◆빈곤층의 아이콘 ‘룰라’

룰라에게 ‘기아 제로’는 평생의 아젠다였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활이 어려워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선반기술자로 공장을 전전하다 새끼손가락이 잘려나갔다. 1980년 그는 “모든 국민을 굶주림에서 해방시키겠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노동자당(PT) 창립을 주도했다. 이후 빈곤 퇴치, 소득 불평등 해소를 위해 싸웠다. 2002년 네 번째로 대선에 도전하며 ‘기아 제로’란 아젠다를 완성했다. 이 아젠다는 최고의 선거전략이 됐다. 당시 브라질 인구 1억7600만여명 중 4400만여명(25%)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절대빈곤층이었기 때문이다. ‘기아 제로’에는 빈곤에 시달리는 도시노동자와 가난한 농민의 소망이 담겨 있었다.

‘기아 제로’에는 과거 유산을 모두 청산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담겨 있었다. 무능한 군사정권이 남긴 하이퍼인플레이션, 재정적자, 엄청난 외채, 수많은 실직자 등이 그것이었다. 전임 카르도주 정권이 추진했던 무분별한 신자유주의적 정책도 일소의 대상이었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굶주림에서 국민을 해방시킬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아젠다를 장기 시스템으로 구축룰라는 집권하자 아젠다의 이름을 그대로 본뜬 ‘포미 제루’라는 빈곤 퇴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절대빈곤 가정에 매달 식권을 나눠줬다. 그러나 준비 부족으로 실패했다. 룰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듬해 빈곤가정 현금지원제도인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가족수당)’를 내놨다.

당시 브라질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를 받았다. 재정 집행에 엄격한 제약이 따랐다. 룰라는 그러나 빈곤 퇴치 프로그램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룰라 정부의 2004년 예산안이 나오자 “돈으로 유권자를 매수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복지 예산이 전년에 비해 40% 넘게 급증했고, 그 중 절반은 직접 국민에게 보조금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룰라는 “배부른 소리 마라. 배고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밀어붙였다. 임소라 한국외국어대 중남미연구소 연구원은 “룰라는 장기적 안목으로 복지 시스템을 설계했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룰라의 아젠다는 살아남게 됐다”고 평가했다.

◆거리에서 ‘거리의 언어’로룰라는 아젠다 마케팅에도 신경썼다. 2003년 1월 취임한 뒤 2009년 3월 말까지 1770번의 대중 연설을 했다. 2003년 1월부터 2006년 6월까지 1230일 중 1014일이나 대통령궁을 나와서 대중과 직접 만나 어려움을 듣기도 했다. 연설에서 사용한 언어는 친근하고 직설적이었다. 체험에서 나온 표현들이었다.

룰라는 직접 홍보 슬로건도 만들었다. ‘브라질, 모든 이를 위한 나라’ 등이다. 직설적 화법은 유엔 총회에서도 그대로였다. 그는 “지구의 절반은 배고파 죽어가는데 나머지 절반은 살을 빼느라 다이어트하고 있다”며 가난한 국가의 실상을 강조했다. 박원복 서울대 브라질연구센터장은 “룰라는 대통령이 돼서도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거리의 언어로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고 평가했다.

◆‘안정’에서 ‘성장’으로 진화

룰라는 2006년 아젠다를 진화시켰다. 서민과 빈곤층에 나눠줄 성장의 파이를 키우기로 한 것. 인프라 확충을 위해 2007년 1차 성장촉진계획(PAC)을 세워 3년간 2366억달러를 투입했다. 2010년에는 2차 PAC에 8833억달러를 쏟아부었다. 이 계획에 환경 파괴 등을 이유로 같은 노동자당 일부가 ‘배신자’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룰라는 굴하지 않았다. 집권 2기에는 균형 있는 대외정책에도 신경을 썼다. 반미 사회주의자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 좌파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볼리비아와 함께 미국 등 선진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브라질 국민을 위해 이념보다 실리를 택한 것이다. 이 자신감은 집권 1기에 달성한 경제적 안정에서 나왔다. 룰라는 2년 앞당겨 전임 카르도주 정권이 빌린 IMF 차관을 모두 상환했다. 경제성장률도 전임 정부 8년 평균(2.3%)보다 나은 연평균 3.5%를 기록했다.

윤상하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