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재단·사회경제협의회…'전통적 합의기구' 로 신뢰 얻어

변혁의 아젠다, 성공한 리더십 - 12년 최장수 총리 비결

신년기획 선택 2012 (4) 루드 루베르스 前 네덜란드 총리
루드 루베르스는 12년간 네덜란드 사상 최장수 총리로 자리를 지켰다. 그 비결은 강력한 리더십과 함께 네덜란드 특유의 정치·사회 제도와 문화를 적절히 활용했다는 점이 꼽힌다.

네덜란드에는 다양한 합의기구가 존재한다. 주요 사회경제정책을 결정하는 공식 기구로 노동재단, 사회경제협의회, 중앙기획청 등이 있다. 네덜란드 국민들은 전통적으로 이런 기관들의 합의를 신뢰해왔다. 노동재단은 1945년 설립된 민간재단이다. 노동계와 재계에서 각각 1명씩 선출돼 공동대표를 맡는다. 20명으로 구성되는 이사회는 네덜란드경영자연합, 중소기업연합, 농업·원예연합에서 총 8명, 노총·기독노총·중간사무직노련에서 총 8명이 각각 참여한다. 이사들은 1년에 10여차례 공식 회의를 갖고 임금과 고용조건에 대해 협상한다.

또다른 한 축인 사회경제위원회(SER)는 1950년 정부가 노·사·정 대화를 위해 설립한 기관이다. 거시경제 운용, 산업정책, 노동 관련 입법, 소비자문제 등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결과를 정부에 보고한다.

홍석빈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국의 노사정위원회가 정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과 달리, 네덜란드는 노동계와 재계가 자발적으로 협의체를 구성해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이들 위원회에 정책적인 처방전을 제시하는 중앙기획청(CPB)도 ‘폴더 모델’의 핵심 축이다. 중앙기획청은 1947년 전후 재건을 위한 독립된 자문기관으로 설립됐다.

네덜란드 라드바우드 대학의 레이 델센 교수는 “정책 형성을 위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며 “여기서 나오는 거시 경제 모델과 예측 보고서는 신뢰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루베르스 총리의 개혁안도 CPB가 만든 보고서를 기초로 완성됐다.

루베르스는 또 네덜란드인의 정서도 개혁에 활용했다. 그는 기독교 전통에 기반한 ‘책임있는 노동’이라는 구호를 내걸어 국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고임금이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주장 대신 “느슨한 복지제도를 이용한 불건전한 무임승차가 사회 공동체의 유대관계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동체 의식에 호소한 것이다.

1990년대 초 재차 복지제도 개혁에 나섰을 때도 “약간의 파트타임 노동만으로 편하게 살려는 이들이 만연해 있다”며 “네덜란드는 병들었다”고 주장했다. 복지를 원하면 그에 걸맞은 역할을 노동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