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보수' 포기 논란] 선거 이기고 보자…'反기업' 공약 준비

비대위'보수 포기' 왜

"양극화 해소·공정 경쟁" 김종인 '중도색깔' 주도
"잘못된 논란에 빠질수 있어" 박근혜 속도조절 시사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당의 헌법인 정강·정책에서 ‘보수’라는 단어를 빼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포퓰리즘에 맞서”라는 문구도 들어내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산하 정책쇄신분과위원회는 5일 전체회의를 열어 2006년 개정된 정강정책을 6년 만에 수정키로 하고 이 같은 방향을 정했다. 사실상 보수이념을 포기하고 중도노선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으로 당내 논란이 일고있다. ▶본지 1월4일자 A1, 5면 참조

이날 논의된 정강정책 수정의 핵심은 현재 등장하는 ‘공동체 자유주의’와 ‘선진화’ ‘보수’ 등의 문구를 삭제하자는 것이다. ‘보수’란 단어는 “새로운 한나라당은 지난 60여년 동안 대한민국의 비약적인 발전을 주도해온 발전적 보수와 합리적 개혁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하는…”이라고 시작하는 정강정책의 첫 문장에 등장한다.

친(親)시장의 색채도 지우려고 시도 중이다. 현 정강·정책에 있는 “한나라당은 큰 시장, 작은 정부의 기조에 입각한 활기찬 선진경제를 지향한다”는 문구에서 “큰 시장, 작은 정부”를 다른 문구로 대체하는 방안을 놓고 검토에 들어갔다. “집단이기주의와 분배지상주의와 포퓰리즘에 맞서 헌법을 수호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란 구절에서 ‘분배지상주의와 포퓰리즘에 맞서’ 부분도 지우는 방안이 유력하다.대신 기존에 없던 공정 경쟁과 대기업 규제(재벌개혁) 등을 담을 수 있는 새로운 문구와 함께 신자유주의로 야기된 양극화 해결과 평생 복지 개념을 집어넣을 계획이다.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 포퓰리즘 정책을 공약으로 내놓고, 대기업 옥죄기, 증세 등을 정책으로 밀어붙일 토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분과위원인 권영진 의원은 이날 회의 후 브리핑에서 “비대위원들은 보수를 빼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논란의 여지는 있어 계속 논의할 것”이라며 “신(新)자유주의 질서가 낳고 있는 양극화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공정경쟁·경제정의 등의 가치를 강조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과거 토지공개념이나 재벌개혁 등의 정책을 주도했던 김종인 비대위원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고, 비대위원들도 이 같은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는 전언이다.당 안팎에서는 표를 위해 보수정당의 60년 이념을 버리는 게 과연 상식적인 것이냐는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정두언 의원은 “정강에서 보수를 빼면 보수가 아니다”며 “지금까진 출세주의, 기득권주의, 군대도 안 가는 보수였다가 이젠 당당하게 제대로 된 보수주의를 세울 때”라고 지적했다.

정옥임 의원은 “지금 정강을 아무리 읽어봐도 뭐가 잘못됐다는 것인지 좀 이해가 안 된다”며 “사람이 문제인데 정강을 고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발했다. 논란이 커지자 박근혜 위원장은 “찬반이 되다보면 잘못된 논란에 빠질 수 있다”며 속도 조절 가능성을 시사했다.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한나라당의 정강은 지금도 좋다”며 “문제는 지킨 적이 없다는 사실”이라고 비꼬았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