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쇼핑 파워' 잠자던 梨大상권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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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Story - 제2의 명동으로 떠오른 '이화여대길'서울 신촌의 경의선 신촌역 앞 공영주차장, 6일 오후 2시 관광버스 9대가 빽빽하게 주차돼 있었다. 얼마 안돼 이화여대 정문 쪽 골목에서 걸어나오는 홍콩 관광객 20여명이 줄지어 한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관광객들 손에는 쇼핑백이 한가득이었다. 버스에 오르던 마이크 리 씨(33)는 “가족과 친구에게 선물로 줄 화장품과 옷을 샀다”며 “품질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다”고 말했다. 이 관광버스가 떠나자 곧이어 중국인 관광객을 실은 또 다른 버스가 도착했다. 20년 동안 관광버스 기사를 했다는 이두호 씨(63)는 “주로 중국인과 홍콩인 관광객을 태우고 다닌다”며 “관광버스가 많을 땐 건너편에 주차를 해야 할 정도”라고 전했다.
비비크림 등 화장품 한번에 20만원 이상 구입
외국인 손님이 절반 넘어…임대료도 30% 껑충
이대(梨大) 상권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 중국, 대만, 홍콩 등에서 온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몰리면서 이대 주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어서다. 2006년 밀리오레M과 2007년 예스APM 등 주변에 들어선 대형 패션쇼핑몰들의 잇따른 실패와 글로벌 금융위기로 생기를 잃었던 때와는 달라졌다. 이곳은 1970년대 맞춤옷 전문인 양장점, 1980년대 청바지·점퍼 캐주얼 매장에 이어 1990년대에는 보세의류·잡화매장·미용실 등이 들어서는 등 전통적 ‘패션의 거리’이기도 했다.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면서 이대 상권이 ‘제2의 명동’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의선 신촌역에서 이대 정문, 이대 정문에서 지하철 2호선 이대역으로 이어지는 ‘ㄱ’자 거리(이화여대길)에는 명동처럼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은 화장품 브랜드숍이 즐비하다. 500m가 채 안되는 거리지만, 같은 브랜드가 여러 매장을 내기도 했다.미샤 이대앞점의 중국인 직원인 최한연 씨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비비크림 시트마스크 등을 중심으로 많이 사갈 땐 20만원어치 넘게 구입한다”고 말했다. 매장에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부가세 환급 서비스를 실시한다는 ‘택스프리(면세)’ 표시도 붙어 있다. 서울시관광협회에서 운영하는 통역안내요원인 ‘움직이는 관광안내소’도 2010년 4월부터 6명씩 배치됐다.
대부분의 상점 앞에는 중국어와 일본어로 된 안내표지가 눈에 띄었다. 신발 전문매장인 ABC마트 이대점의 김민수 점장은 “2년 전 문을 열었는데 1년 전부터 외국인 손님이 부쩍 늘기 시작했다”며 “손님 중 절반은 외국인 관광객”이라고 전했다. 공영주차장 앞에서 목도리 장갑 등 잡화를 판매하는 남기돈 씨(67)는 “외국인과 내국인 손님 비율이 6 대 4 정도”라며 “관광객들 없으면 장사를 못할 지경”이라고 설명했다.
이대 자체가 관광명소로 자리잡은 것도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한 요인이다. 중국인 관광객 사이에서는 이대 정문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부자가 된다’ ‘노처녀는 결혼을 하게 된다’는 등의 소문도 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의선 신촌역 앞의 관광안내소에서 일하는 김윤태 공익근무요원(31)은 “개인적으로 여행하는 일본인 관광객들의 문의도 더러 있지만 80% 이상이 중국, 대만, 홍콩 등 범중국 단체 관광객”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관광버스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가까운 곳에 있는 것도 외국인 단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약세를 보이던 임대보증금과 월 임대료도 최근 크게 올랐다. 이화여대길의 13.2㎡(약 4평)짜리 매장 임대보증금은 7000만~8000만원, 월 임대료는 300만원 선에서 형성되고 있다. 이성완 닥터공인중개사 대표는 “전반적인 임대료가 1년 새 20~30% 뛰었다”고 설명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