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첨단 문명과 만난 黃狗의 비애…"고통속에서 찾아낸 꿈 형상화했죠"

日 모리미술관서 개인전 펼치는 '예술전사' 이불 씨
"꽉 막힌 세상일지라도 그 속에서 행복과 희망을 찾아내는 게 예술"

< 黃狗 : 누런 강아지 >
"전시 때문에 일본으로 오면서 마음이 싸했습니다. 지난해 쓰나미와 지진을 겪은 일본에 희망을 잘 전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섰거든요. 20년간의 전시 경험 중 이번이 가장 각별한 것 같습니다.”

파격적인 설치조각으로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예술전사’ 이불 씨(48)가 일본 도쿄 롯폰기힐스의 모리미술관에서 지난 4일부터 개인전을 시작했다.모리타워 53층에 있는 모리미술관은 근처의 국립신미술관, 산토리미술관과 함께 ‘롯폰기 아트 트라이앵글’을 이루며 새로운 예술 거점으로 부상한 전시장. 이곳에서 만난 이씨는 흥분과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작가로서 한 인간이 군사정권 이후 어떻게 살아왔는지, 작업을 어떻게 진행했는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겁니다. 연좌제 때문에 가족들이 취업조차 할 수 없었던 군사정권 시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20여년간 이상향을 향한 갈망을 시각예술적 측면에서 고민해왔죠.”

그는 “지금까지의 작품활동과 도전 정신이 일본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며 “이 시점에서 우리가 딛고 있는 문화적 정치적 배경을 그대로 투영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초기 작업들이 메시지를 직접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최근에는 보다 복잡하고 읽어내기 힘든 작업들을 주로 하는데 단순한 설명보다는 작품 속에 어떤 요소가 숨어 있는지,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관람객이 궁금해하도록 자극하는 것을 즐긴다”고 덧붙였다.“어린 시절 아버지는 연좌제 ‘딱지’가 붙어 백수로 지낼 수밖에 없었지요. 어머니는 작은 구슬을 꿰는 조그만 가내공장을 운영하며 생계를 책임졌어요. 어머니의 구슬 꿰는 모습을 통해 정치적 사회적 변혁의 파도에 지배당하는 개인의 감정과 그 관계성을 시각예술로 보여주고자 한 게 제 예술의 시발점입니다.”

그는 초기에 여성과 기술문명의 밀접한 관계를 여전사 ‘사이보그’와 ‘몬스터’ 조각 형태로 표현했고, 크리스탈과 구슬을 이용한 조각, 인간의 영면(永眠)을 상기시키는 가라오케 캡슐 공간, 거울의 반사를 응용한 ‘인피니티’ 등을 잇달아 선보였다. 최근에는 16년간 함께 살다 2년 전에 죽은 황구(黃狗·누런 강아지)에 주목했다.

“30~40대 중요한 시기를 함께 보낸 강아지가 구토를 하며 죽어가더군요. 그 애잔함과 제 젊은 날의 마지막 부분이 겹쳐지면서 묘한 감정이 일었어요.”그는 강아지의 죽음을 보고 예술 인생을 한번쯤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아낸 설치작품이 ‘비밀스런 공유자’다. 강아지의 모형을 유리 구슬과 크리스탈 조각으로 형상화한 것.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쿄 풍경이 오버랩되면서 인간의 좌절과 실패를 은유적으로 시각화했다.

“무수한 시간에 걸쳐 탄생한 도시 문명과 죽은 황구의 비애를 동시에 보여주죠. 인간의 열정과 고통의 순간들을 일종의 퍼포먼스 형태로 묘사한 겁니다.”

날카로운 사회적 비판의식과 역사의식, 인간의 이상과 현실에 대한 지적 탐구를 미의식으로 승화시킨 그는 “좌절과 실패로 꽉 막힌 세상일지라도 그 속에서 행복과 희망을 찾아내는 게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기계적이고 유기적인 형체가 뒤섞인 사이보그와 인간의 영면을 상기시키는 가라오케 캡슐 공간,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 건축물 형상 역시 인간의 고통 뒤에 숨겨진 희망의 상징이다.

이번 전시의 주제를 ‘나로부터, 오직 그대에게’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2009년 제가 힘들었을 때 보내준 남자친구의 편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 메시지를 통해 고통과 희망의 변증법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전시장은 ‘순간적 존재’ ‘인간을 초월하여’ ‘유토피아와 환상풍경’ ‘나로부터, 오직 그대에게’의 4개 섹션으로 꾸며졌다. 손과 발이 여러 개 달린 몬스터와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든 사이보그 등 초기 작품은 물론 실크와 구슬, 물, 타일 등 장식적 재료를 사용한 근작까지 45점을 내보였다. ‘스튜디오’ 섹션에선 드로잉과 모형들을 보여준다.

길이가 8m에 달하는 설치 작업 ‘천지’는 물고문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구슬과 크리스탈을 활용한 작품들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드러낸다. “누구인지는 볼 수 없지만 제 작품을 스쳐간 여러 사람의 영혼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그는 “앞으로도 세계사와 신화, 한국 근대사를 녹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것”이라며 “그것은 실패를 미래의 유토피아로 밀어넣어 삶의 존재이유를 찾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오는 5월27일까지 계속된다.

도쿄=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