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구왕' 박종완 437억 역외탈세 1심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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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국내 거주자 아니다"역외탈세 혐의로 기소된 ‘완구왕’ 박종완 에드벤트 엔터프라이즈 대표(사진)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완구왕’ 사건은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 ‘구리왕’ 차용규 씨 사건 등과 함께 국세청이 조사한 대표적 역외탈세 사건이다.
국세청 '구리왕' 이어 또 고배
▶1월25일자 29면 참조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부장판사 김시철)는 세금 437억원을 포탈하고 947억원 상당의 재산을 해외에 은닉한 혐의로 기소된 박 대표에 대해 9일 무죄를 선고했다. 박 대표는 1996년 자본금 10만달러로 세운 홍콩 법인을 통해 미국 타이(Ty)사에 수출한 봉제인형 ‘비니 베이비’ 등이 미국 등에서 인기를 끌어 부를 쌓은 인물이다.
국세청은 최근 ‘구리왕’ 차씨가 과세전적부심사에서 국내 거주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받아 세금 약 1600억원 추징에 실패한 데 이어 ‘완구왕’ 사건 1심에서도 고배를 마시게 됐다.
◆완구왕, 왜 무죄판결 받았나국세청과 검찰은 “1991~2002년 사이 박 대표는 연간 153~332일 국내에 체류했고, 주민등록을 유지했다”며 박 대표가 국내거주자에 해당돼 과세 대상이라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박 대표가 1997~2000년 미국 영주권을 취득했다 포기하며 국내에 장기 체류했지만, 박 대표의 부인과 두 자녀는 영주권을 유지하며 계속 미국에 거주했던 점에 주목했다. 박 대표와 같은 경우는 국가 간 조세협정에 따라 어느 국가의 거주자(납세의무자)인지 결정되는데, 한·미 조세협약은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주소지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미국 영주권자가 가족과 떨어져 한국에 오래 머무른다 해도 한국에 종합소득세를 납부할 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업 근거지가 한국이 아닌 홍콩 법인이었다는 점도 무죄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국세청과 검찰은 박 대표가 홍콩 법인의 이익을 말레이시아 라부안 등 조세피난처에 세운 페이퍼컴퍼니에 커미션 명목으로 돌리고 차명계좌에 은닉해 고의적으로 탈세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박 대표의 사업 근거지가 한국이 아닌 홍콩이라는 점을 들어 “페이퍼컴퍼니는 홍콩 법인세 경감 등이 목적이지, 국내에 내야 할 세금 탈루와는 관계가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박 대표의 변호는 법률사무소 김앤장이 맡았다. ◆역외탈세 제동 실패… 국세청 곤혹
지난해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역외탈세 조사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면서 국세청은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역외탈세 조사를 통해 올해 세수 1조원 이상을 확보한다는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역외탈세에 대한 과세의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국세청이 구체적인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무리하게 세금을 추징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판결로 역외탈세에 대한 국세청 조사뿐 아니라 검찰의 수사에도 허점이 드러났다. 법원은 “조세 회피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점이 추가로 증명돼야 한다”며 엄격한 입증 책임을 지웠다.
국세청과 검찰은 주요 참고인들이 홍콩에 거주하고 있어 조사에 차질을 빚었고,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 관련 자료 확보에도 난항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국이나 필리핀처럼 국적자 모두에게 세금을 부과하거나 국제조세조약에 준하는 기준으로 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고운/강동균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