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당신은 지금 행복하세요?

디지털 세상이지만 종속은 안돼…오늘 컴퓨터와 휴대폰을 꺼보자

서종렬 < 한국인터넷진흥원장 simonsuh@kisa.or.kr >
“당신 지금 행복해?” 누군가 내게 물어본다면 솔직히 당당하게 대답할 자신이 없다. 어린 시절, 김일 선수의 레슬링을 볼 수 있는 TV 한 대만 있으면,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양옥집, 그리고 장관 또는 대기업 사장이나 탈 수 있는 자동차 한 대만 있으면 행복할 줄 알았다. 최신 디지털 기기가 넘쳐나는 지금 우리는 행복해졌을까? 그렇게 단순한 소유의 개념이 행복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을 포함한 수많은 철학자들이 평생을 바쳐 ‘행복론’에 매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베르트랑 베르줄리는 그의 저서 ‘내가 행복해야만 하는 이유’에서 “생이 생으로 가득 찰 때 기쁘다. 생에서 생이 다 빠져나가 버리면 괴롭다. 저 자신이 된 삶은 조화롭고, 자기에게 낯선 삶은 찢어진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기에 종속돼 오히려 기기의 시종이 돼버린 인간에 대한 적절한 충고다. 디지털혁명이 우리에게 선물한 다양한 기기와 기능은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었지만 이런 세상은 무수히 많은 ‘외부’와 끊임없이 ‘접속’하고 ‘연결’돼야만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

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제공된다. 일례로 홈오토메이션을 통해 자동차 시동을 걸고, 목적지에 가기 위해 길을 미리 알아둘 필요도 없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능을 장착한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기계적으로 운전하면 된다.

새로운 차세대 디지털 기기가 나온다는 발표는 우리를 늘 설레게 한다. 디지털 기술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우리는 그만큼 더 편리해지고 편안해진다. 그때마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경험이 한 단계씩 단순해진다는 것은 모른 채…. 인간은 아날로그적 존재다. 인간의 감정, 행동 등을 어떻게 디지털화할 수 있겠는가? 독서와 사색이 없으니 사고력도 부족하다. 지식은 정신이 아닌 위키피디아가 담고 있고, 우리의 뇌는 인공지능 로봇보다 못해져가고 있다. 뇌는 점점 더 무뎌지고, 사색이나 깊은 상념에 젖거나 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시대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혜가 있을 리 없고, 가슴에 따뜻한 마음이 담길 리 없다. 에릭 슈미트 구글 최고경영자(CEO)도 펜실베이니아대 졸업식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컴퓨터를 끄고, 휴대폰을 내려놓아라. 그러면 주위에 인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에 좀 더 머물러 인생에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먼저 찾도록 하라.”

스티브 잡스와 더불어 디지털 혁명의 상징 인물인 슈미트가 그런 연설을 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주말에는 컴퓨터를 끄고 스마트폰도 놓아둔 채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자연 속에서 깊게 호흡하면서 아날로그 삶 속에 잠시 머물러 보기 위해 말이다.

서종렬 < 한국인터넷진흥원장 simonsuh@kis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