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한 홈플러스 사장 "한국 경제는 속 빨간 수박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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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만 시장경제"…대형마트 규제에 직격탄“작금의 골목상권 정책은 진정으로 국민과 구멍가게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반서민적인 정책으로 역사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규제 계속되면 英 테스코 투자 끊길 수도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이 최근 강화되고 있는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규제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지난 27일 저녁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생명의 쇼핑카트 캠페인’ 관련 기자간담회에서다.이 회장은 모두 발언부터 ‘수박경제론(論)’을 거론하며 골목상권 보호 명목으로 규제를 강화하고 나선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한국 경제는 ‘수박경제’ 같다”며 “겉은 시장경제를 유지하지만 안을 잘라보면 빨갛다”고 말했다. 획일적으로 특정 업태의 신규 출점 및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시장경제와 맞지 않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보면 중국은 ‘역(逆)수박경제’와 가깝다”며 “사회주의인 중국이 오히려 시장경제를 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후 “할 말은 많지만 이 자리에서는 언급을 삼가겠다”며 자제하던 이 회장은 골목상권과의 상생과 관련된 질문이 이어지자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대형마트와 SSM의 영업일수 및 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사회·공산주의에도 없고 전 세계적으로 어느 국가도 하지 않는다”며 “소상인이 아닌 ‘중대(中大) 상인’ 보호조치”라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지금 규제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는 (동네 마트 등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10억원에서 30억원 정도 투자했다”며 “이들은 영세상인이나 구멍가게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 슈퍼는 (상품조달력과 규모의 경제를 갖춘) 대기업 마트보다 물건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며 “결국 서민들이 품질 좋은 상품을 더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규제조치에 대한 홈플러스 모회사인 영국 테스코의 반응과 한국 투자 지속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이 회장은 “상당히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며 “각종 규제로 점포를 낼 수 없는 데다 합의를 통해 점포를 열어도 상당한 시간과 추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한국에 대한 투자를 태국이나 중국으로 돌리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며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각종 규제가) 나라를 망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최근 영업 규제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골목상권 정책을 비판한 이 회장의 공개 발언은 총선을 앞둔 정치권과 중소상인단체 등에 상당한 파장과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장은 대형마트와 SSM 업계를 대변하는 체인스토어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29개사를 회원으로 둔 체인스토어협회는 지난 17일 영업일수와 시간을 제한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규제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