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인종 차별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은 2008년 미국엔 ‘선천적 결손증’이 있다고 말했다. 흑백 차별이란 태생적 결함을 안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미국의 건국 이념은 자유· 평등· 인권이지만 흑인에겐 오랫동안 이런 가치가 적용되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1787년 제정된 미국 헌법은 인구를 셀 때 흑인노예 1명을 자유인(백인)의 5분의 3으로 쳤다. 1863년 노예 해방선언이 이뤄진 뒤에도 흑인에 대한 차별은 계속됐다. 남부에선 1960년대 초까지 흑백 분리 정책이 자행됐다. 버스와 전철, 학교 병원 식당 등 모든 곳에서 흑인은 차별받았다. 1955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선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버스에서 “피곤하다”며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돼 벌금형을 받은 걸 계기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이 벌어졌다. 그 결과 1956년 11월 연방대법원은 몽고메리의 인종 분리 규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불구, 앨라배마 버밍햄에서 태어난 라이스(58)는 어린 시절 백화점 의류매장에서 “탈의실은 백인 전용이니 입어보려면 창고로 가라”는 수모를 당했다. 1964년 모든 공공장소의 흑백차별 금지법이 생긴 이후 들어간 덴버대학에서도 ‘IQ가 낮은 흑인들 때문에 인류가 퇴보한다’는 윌리엄 쇼클리의 열성학 강의를 들어야 했다.

UN이 1965년 채택한 인종차별 철폐 국제조약에 190여개국이 가입했음에도 인종 차별은 도처에서 발생한다. 박지성 역시 아인트호벤에선 경기 때마다 관객들의 야유를 들어야 했고, 맨유 입단 후에도 한동안 티셔츠 판매원이란 놀림을 당했다. 한국인에 대한 이 같은 차별 소식에 분노하는 우리가 흑인을 희화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고 한다. 한 흑인 네티즌이 영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K-Pop or KKK-Pop?’이란 제목으로 K팝 스타들이 흑인을 비하하고 있다는 글과 동영상을 올렸다는 것. 동영상엔 국내 TV에 출연한 한류 스타들이 흑인 분장을 한 모습 등이 실렸다.

유튜브와 SNS를 통해 국내 프로그램과 비디오, 미니홈피까지 전세계에 공개되는데 제작진이나 연예인은 무심하게 행동한 결과다. 국내 미디어의 차별불감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툭하면 대놓고 외모 비하를 일삼는 건 물론 인종과 민족, 성 차별적 내용을 내보내는 일도 부지기수다.

차별은 의도 여부와 상관없다. 느끼는 쪽에서 차별이라고 느끼면 차별이다. 한류가 혐한류로 바뀌는 순간의 파장은 상상하기 어렵다. 방송 등 미디어와 대중문화계는 물론 우리 모두 차별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해야 할 때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