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선운사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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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선운사 동백
손정순나무의 상처가 꽃일까
꽃 속에 집이 보이지 않는다
꿀벌들이 붕붕거리고흰 붕대를 풀어내리는 백목련이
동백숲을 에워싼다.
이제 막 피어나는 저 어린 꽃봉오리들어디가 아픈지,
붉은 상처마다 깊숙이
벌들이 침을 놓아주고 있다.
동백나무 자생지의 북방한계선에 있어 4월 중순에 꽃을 피우는 선운사 동백. 늦봄의 도솔천 물소리처럼 느릿느릿 이제야 망울을 터뜨렸습니다.
동백숲을 에워싼 백목련이 흰 붕대를 풀어내리는 동안 ‘막 피어나는 저 어린 꽃봉오리들’ 사이로 붕붕거리는 꿀벌. 그들이 침을 놓는 자리마다 붉게 피어나는 우주의 집. 누가 이렇게 감춰놓았을까요. 제 몸의 상처마다 꽃자리를 준비하는 동백나무, 그 상처를 치유하는 꿀벌의 침, 우리 마음속의 꽃술을 깊숙하게 찌르는 성찰의 힘…. 500년 넘도록 그 자리를 지켜온 3000그루의 동백숲이 오늘따라 더 환하고 아름답습니다.
고두현 문화부장 · 시인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