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개 공기업 빚 328조…현 정부서 2배 급증

공기업 부채 이대로 둘건가 (上)

작년 공공요금 묶인 탓에 에너지·SOC업체 부채 폭탄
공기업 "가격통제 때문에 자율적인 경영활동 어려워"
정부는 '모르쇠' 일관

이명박 정부 들어 강력하게 추진된 ‘공기업 선진화 대책’에도 불구하고 공기업의 재무 상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27개 공기업의 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300조원을 넘어섰다. 정부가 4대강 사업 등 경기 부양과 물가 안정 등 민생 대책을 앞세워 공기업을 몰아붙인 결과다.

◆공기업 빚, 5년 만에 2.4배로 증가한국경제신문이 국제회계기준(IFRS)으로 집계한 27개 공기업의 지난해 총부채는 328조4000억원으로 처음 300조원을 돌파했다. 올해부터 공기업 회계제도가 기존 한국회계기준(K-GAAP)에서 IFRS로 바뀌면서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이는 현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인 2007년 공기업 부채(137조2000억원)보다 2.4배나 급증한 규모다.

공기업 빚은 2008년 175조8000억원에서 2009년 211조8000억원, 2010년 244조6000억원으로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특히 정부가 서민 대책의 일환으로 물가 안정을 국정의 최우선 목표로 내세운 지난해 재무 상태가 크게 악화됐다. IFRS를 적용하더라도 공기업 빚은 2010년 290조8000억원으로 1년 새 37조5000억원 급증했다.

◆에너지·SOC 관련 공기업 부채가 대부분공기업 중에서 부채 문제가 가장 심각한 분야는 에너지와 사회기반시설(SOC) 부문이다. 지난 한 해 동안 4대강 등 국책사업 추진과 공공요금 안정을 위해 전기료·교통요금 인상을 억제한 결과다.

불과 1년 만에 한전 10조4226억원, 가스공사 5조6720억원, 석유공사 4조9290억원 등 3대 에너지 공기업의 부채만 20조원 넘게 늘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9조446억원, 수자원공사 4조4955억원, 도로공사 8623억원 등 SOC 관련 공기업 부채도 15조원 가까이 늘었다. 이들 공룡 공기업 6곳의 부채 증가 규모만 35조원으로 27개 전체 공기업 부채 증가액의 92.1%를 차지했다.

◆빚 내서 빚 갚는 악순환 구조문제는 빚을 갚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하는데 정부의 가격통제를 받다보니 원가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국책사업을 안 할 수도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어서 결국 빚을 갚기 위해 또다시 빚을 지는 악순환 구조에 빠지고 있다.

지난해 공기업의 전체 영업이익은 6조8000억원으로 2010년 8조5000억원과 비교해 1조6000억원이나 줄었다. 순이익은 2010년 2조3000억원에서 지난해 -5000억원으로 떨어졌다. 이 중 한전이 3조2000억원, 한국석유공사가 15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며 “기업으로서 정상적인 결정을 못하게 할 거면 차라리 이름에서 ‘기업’을 떼버렸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정부, 뒤늦게 관리한다지만…정부는 공기업의 부채 증가에 대해 “공식적으로 정부 부채가 아니며 공기업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선을 긋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공기업은 공적 기능을 수행하지만 정부로부터 독점사업을 받은 만큼 경영 성과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공기업 부채는 결국 정부 부담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만큼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2010년 LH의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1조2000억원의 재정을 투입하기로 결정했지만 부채문제는 여전히 발등의 불이다. 한국은행은 LH 한 곳에만 54조~61조원의 재정 투입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도 공기업 부채의 심각성을 감안, 뒤늦게 공기업 부채를 관리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 올해부터 자산 2조원 이상인 공기업은 향후 5년간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서를 국회에 제출하도록 한 것이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정부가 공기업에 빚을 지게 해놓고 이제 와서 스스로 재무 구조조정을 하라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며 “공공서비스 비용을 단계적으로 현실화하고 무리한 국책사업을 떠맡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서보미/조미현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