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4곳 영업정지] 80년대 초 서울대 법대생 행세…고객돈 203억 '먹튀'하려다 덜미

'밀항 시도' 김찬경은

아파트 시행사업하며 큰돈…1999년 금융업 뛰어들어
'다이아몬드 파문' CNK 2대 주주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회삿돈 203억원을 빼돌려 중국으로 밀항하려다 붙잡힌 것은 금융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김 회장은 젊은 시절부터 사기 행각을 벌여왔다는 게 그를 아는 사람들의 전언이다. 그는 1981년 전두환 정부가 들어서면서 군대에 징집됐던 대학생들이 대거 복학하던 틈을 타 서울대 법대 복학생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대 법대 복학생 모임인 ‘법우회’에 들어가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고교도 졸업하지 않았다. 허술한 학교행정 탓에 김 회장은 학생증을 잃어버렸다는 핑계로 도서관 출입증만 가지고도 학생으로 신분세탁을 할 수 있었다. 그의 사기 행각이 드러난 것은 1982년 겨울 서울대 졸업앨범을 제작하면서다. 당시 앨범 편집위원은 사진과 학적을 대조하던 중 김 회장이 가짜 학생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발각 후 서울대 재학(?) 중 결혼한 부인과도 이혼했다.

김 회장은 1980년대 후반부터 아파트 분양 시행사업을 하면서 큰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우림산업개발 회장에 오르며 1990년대 중반에는 서울 강남의 23층짜리 빌딩도 사들였다. 하지만 이내 닥친 외환위기를 비켜가지 못했다. 그는 빌딩 등을 모두 정리하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다. 이때 시작한 게 저축은행이다. 외환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1999년 제주도에 본점을 둔 미래저축은행(당시 대기금고)을 5억원에 인수해 금융업에 뛰어들었다.

김 회장처럼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이 저축은행을 경영할 수 있었던 배경엔 1990년대 중반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규제를 완화하면서 기존에 있던 대주주 적격성심사 자체를 없앴던 정책실패가 자리잡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주주 심사를 없앤 이후에 자질이 불량한 사람들이 대거 상호금고의 대주주가 됐다”며 “10여년이 지나서야 다시 적격성심사를 부활시켰지만 이미 부실은 곪아터지기 직전까지 와 있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저축은행 인수 후 ‘대형화·전국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2002년 예산저축은행을 합병해 대전 천안 등 충청권에 영업 기반을 마련했다. 2005년에는 삼환저축은행을 합병, 서울까지 진출했다. 2009년 한일저축은행을 인수, 미래Ⅱ저축은행을 설립하면서 업계 10위권 회사로 키웠다.

지난해 초 저축은행들이 무더기 영업정지 사태를 맞으면서 미래저축은행도 그동안의 무리한 사업 확장에 따른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미래저축은행은 지난해 오리온그룹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 기소된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에게 수백억원을 대출해줬다가 거의 회수하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 9월 적기시정조치를 유예받았으나 추가 부실이 발생하며 끝내 고비를 넘지 못했다.

올해 초에는 주가 조작 혐의로 검찰 수사 중인 다이아몬드 개발 회사 씨앤케이인터내셔널(CNK)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고도 신고하지 않아 금융당국의 경고 처분을 받았다. 미래저축은행은 CNK의 2대주주다.

류시훈/김일규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