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지식은 소멸되지 않는 자원…특허 만료돼도 가치는 불변…'新 격물치지'로 미래 대비를"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윤종용 위원장

만물의 본질은 지식재산, 기업경쟁력과도 직결
삼성 VTR 사업부장때 매출 15%가 로열티로 나가
특허 확보 중요성 실감

< '新 격물치지' : 만물의 본질 탐구해 지혜에 이른다 >
‘샐러리맨의 신화’ 윤종용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장(68·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신(新) 격물치지(格物致知)론’이 주목받고 있다.

격물치지는 원래 중국 사서(四書) 중 하나인 대학에 나오는 구절로 ‘만물의 본질을 탐구해 지혜에 이른다’는 뜻이다. 그의 ‘신 격물치지론’은 만물에 지식재산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지혜’를 ‘지식재산’으로 재해석한 것. 윤 위원장은 요즘 대내외 모임과 강연 때 “만물의 본질은 지식재산으로 이뤄져 있다”고 자주 강조한다.그가 위원장으로 취임한 지 8개월. 윤 위원장은 취임 이후 이 같은 ‘신 격물치지론’을 조직 내외부에 구현하고 조직을 새롭게 정비하는 데 주력해왔다. 성과가 적지 않다. ‘21세기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안인 ‘1차 국가지식재산기본계획’이 지난해 말 수립됐다. 21개 중앙부처 및 16개 광역지방자치단체에 지식재산 정책 책임관(국장급)을 지정하는 성과도 거뒀다.

지난달에는 산·학·연·관 71곳을 집결해 ‘국가지식재산네트워크’를 결성하고 1차 콘퍼런스를 열었다. 윤 위원장의 강한 추진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성과라는 평가다. 최근 서울 역삼동 윤익빌딩 집무실에서 윤 위원장을 만나 신 격물치지론의 핵심인 지식재산산업 육성론에 대해 들어봤다.

▷지식재산의 중요성을 ‘신 격물치지론’에 담아 강조하고 있는데, 쉽게 설명해 주시죠.“사람들이 아침에 깨서 잘 때까지 접하는 모든 것은 정보입니다. 책, 서류, 인터넷, 신문, 하다못해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마저도 정보입니다. 정보가 체계적으로 정리되면 지식이고, 지식에 의해 창출된 재산이 지식재산입니다. ‘소멸되지 않는 영원한 자원’이기도 하죠. 예를 들면 어떤 기술의 특허권이 만료(20년)된다고 해서 이 특허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응용(개량)특허로 계속 이어져 인류가 사용하는 모든 제품에 녹아들어가게 됩니다. TV의 전원 스위치 하나에도 수십 개 이상의 특허가 들어가 있어요.”

▷지식재산이 기업의 경쟁력이란 말씀이군요.

“시대가 그렇습니다. 특허 디자인 상표 등 산업재산권, 콘텐츠 저작권 등 모든 게 이권화돼 분쟁의 소지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특허로 취급하기 모호했던 반도체 회로설계법이나 바이오 실험기술, 영업비밀이나 데이터베이스에 담긴 특정한 정보도 ‘신지식재산권’이라는 배타적 권리로 인정하기도 합니다. 유형자산은 눈에 보이니 가치를 평가하기 쉽죠. 그런데 지식재산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이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식재산의 가치와 중요성은 기술교육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체화돼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고 있는 게 아쉽습니다.”▷지식재산권과 관련한 분쟁은 내용이 잘 알려지지 않아 언론이 중요성을 부각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당사자들이 섣불리 지식재산 내용을 얘기할 수 없죠. 상대방은 변호사, 변리사, 기술자 등 모든 전문가를 동원해 고도의 전략을 구사하는데, 자신의 패를 노출할 수 있나요. 노출되는 순간 공격의 빌미를 제공합니다.”

▷삼성전자 재직시 특허 중심 경영을 선포하셨는데, 당시 상황이 어땠습니까.“1980년대 초 VTR 사업부장을 할 때입니다. VTR 관련 원천 특허를 미국과 유럽이 각각 1개, 일본이 2개를 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응용 특허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특허가 거의 없고 제품 가격이 점점 떨어지다 보니 나중에는 VTR 매출의 15%가 특허 사용료(로열티)로 나갔습니다. 일본이 공격을 해오는데 그 쪽은 특허가 3000여건이고, 우리는 고작 수십여건밖에 없어서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대로는 큰일 나겠다 싶어서 좋은 기술, 특허 개발과 인재 영입에 올인한 거죠. 특허라고 다 같은 게 아니어서, 가치가 있는 걸 확보해야 합니다.”

▷미래를 지배할 특허와 기술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기술의 연속성과 확장성을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어떤 제품용으로 기술이 개발됐다고 해서 그 제품에만 쓰이는 게 아닙니다. VTR에 쓰이던 영상, 음성처리 기술은 지금 스마트폰으로 다 넘어갔습니다. 음성, 글자, 영상이 정보 처리의 관건인데, 예전 아날로그 시대에는 이 3개를 합치는 게 불가능했죠. 디지털 시대에는 이들을 동시 처리하는데 소프트웨어, OS(운영체제)가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당시에는 알기 힘들었습니다. IBM이 OS사업권과 특허를 마이크로소프트(MS)에 넘겼는데, 결과적으로 MS는 윈도를 만들어 대박이 난 것입니다. IBM은 멀거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결국 PC사업부를 중국에 넘겼잖습니까. 애플은 원래부터 OS로 매킨토시가 있었는데 아이폰이 나온 원동력도 사실 이것입니다. 미국은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개발 전통이 워낙 강해서 유망한 애플리케이션이 나오면 수십만명의 얼리어답터와 엔지니어들이 달라붙어 그걸 하드웨어와 연동합니다. 우리는 그런 기반이 없죠. 그래서 OS는 아예 외부에 맡기고 삼성이 강한 영상처리 기술을 토대로 하이엔드(고가, 고품질) 시장으로 재빨리 눈을 돌린 것입니다. 그게 현재 스마트폰입니다. 전 세계 하이엔드 휴대폰 시장의 절반 이상을 삼성이 점유하고 있습니다.”

▷일부 교수들은 특허와 기술, 중소기업을 연계한 부처의 신설 필요성을 말하기도 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정부 부처는 조변석개(朝變夕改)하면 안 됩니다. 과학기술 분야 정부 출연연구소 문제만 해도 파악하는 데 9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겨우 1~2개월 활동하는데 정부 조직을 다 뜯어고치죠. 반세기 동안 이어진 정부 조직의 공과를 따지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국과위도 생겼으면 제대로 일하게 힘을 실어줘야 하는데, 결국 출연연 통합안이 좌초하면서 기대했던 결과를 못 냈습니다. 과학기술 관련 조직만은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으로 가야 합니다.”

▷지식재산위원회 활동에 어려움은 없습니까.

“지식재산위원회는 자문위원회이면서도 전략기획단 등 실행 조직을 보유한 특수한 형태입니다. 원래 중점 추진 과제는 3~5개 정도만 하려고 했는데, 12개로 늘어났습니다. 지식재산기본계획에 따라 지식재산기본법이 만들어지고 위원회가 출범한 건데, 많은 변화가 정부 내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본계획을 전 부처에 내려보냈고, 각 부처가 사업을 벌이는 데 반영하고 있습니다. 지재권과 직접 관련이 없는 기관들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금융위원회도 프리보드를 통해 벤처 창업과 특허 취득을 지원할 방침입니다. 지재위가 일일이 나서는 게 아니라 예산을 어떻게 편성해 집행할지 프레임을 만들고, 부처가 이 프레임대로 움직이는 게 중요합니다.”

▷12개과제 중 가장 중요한 걸 꼽는다면.

“지식재산의 창출과 활용입니다. 창출은 기업과 대학, 연구소가 하는데 R&D를 시작할 때부터 지식재산을 관리하는 개념을 동반해야 합니다. 지식재산을 제대로 평가해서 유통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우수한 아이디어만 가져도 사업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이걸 시장 메커니즘에 맡기면 좋은데, 국내 금융기관이 아직 익숙지 않습니다. 부동산 담보 같은 게 없으면 안 되죠. 또 기업 대출에 대표가 연대보증을 서서 나중에 잘못되면 개인이 다 뒤집어쓰는 구조가 있는 한 힘듭니다. 산·학·연 협동연구 결과로 생긴 지식재산을 정확히 평가하는 모델이 먼저 있어야 하고, 이를 담보로 융자해주는 모델을 조금씩 넓혀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건 한 부서나 기업에서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고,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돼야 가능합니다.”

윤종용 위원장은
대표이사만 18년…초우량 삼성전자 키운 '샐러리맨의 신화'

윤종용 국가지식재산위원장은 ‘샐러리맨 신화’ ‘공대 출신 경영자의 모범’ 등으로 불린다. 오너 집안 출신이 아닌 엔지니어 출신 직장인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성과와 영광을 경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1944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윤 회장은 196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과 동시에 삼성에 입사했다. 삼성전자 종합연구소장, 삼성전자 가전부문 대표, 삼성전기 대표, 삼성그룹 일본 본사 대표 등을 거쳐 1997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2000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라 8년간 일했다. 1990년 3월 삼성전자 가전부문 대표로 취임한 뒤 2008년 삼성전자를 떠날 때까지 무려 18년을 대표이사로 지냈다. 삼성전자 대표 시절 1년에 100일 이상 해외 출장을 떠나는 철저한 ‘현장 중심 경영’으로 삼성전자를 초우량 기업으로 일궈냈다. 삼성전자 상임고문을 맡으며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회장,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이사장 등 다수 직책을 맡고 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