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 증자 때 직원 퇴직연금 해지 강요했다"
입력
수정
'영업정지' 미래저축은행 제주 본점 가보니…“허공으로 날아간 퇴직금만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횡령을 일삼고 밀항까지 시도한 김찬경 같은 사람을 믿고 증자에 참여했다고 생각하니….”
지점마다 스피커 통해 호통…본점 들르면 입구부터 직원 도열
황제처럼 군림…"분통 터져요"
9일 기자가 찾아간 미래저축은행 제주 이도2동 본점은 영업정지로 인해 정문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건물 옆에 있는 쪽문으로 직원들만 이따금씩 오갔다. 이곳은 최근 구속된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1999년 대기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하면서 금융업을 시작한 곳으로 등기상 본사로 돼 있다.본점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30여명의 직원들은 회사 돈 200억원을 빼돌리는 등 김 회장의 각종 비리가 속속 드러나자 망연자실했다. 일손을 놓은 채 삼삼오오 모여 한푼도 받지 못하게 된 퇴직금 얘기만 나눴다. 미래저축은행 전 직원은 지난해 9월 영업정지를 유예받은 직후 기존에 가입한 퇴직연금을 미리 정산해 80억원가량을 유상증자에 보탰다.
당시 김 회장은 모 임원을 바람잡이로 앞세워 전 직원을 대상으로 퇴직연금 중도 해지 동의서를 받게 했다. 법적으로 퇴직연금을 중도 해지하기 위해서는 전 직원의 서명이 들어간 동의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름을 밝히기 꺼리는 한 여직원은 “김 회장은 지난해 증자를 앞두고 400여명 전 직원에게 3개월 후 돈을 돌려줄 테니 증자에 참여하라고 지시했다”며 “퇴직연금을 중도 해지하고 그 돈을 증자에 넣으라고 강요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당시 직원들한테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게 했다”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증자 당시 직원들은 퇴직연금을 정산해 3000만~4000만원을 넣었다. 대출까지 받아 1억원을 쏟아부은 직원도 있다. 한 영업부 직원은 “김 회장이 올해 초까지도 증자를 통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5%대로 끌어올렸으니 퇴직금은 걱정하지 말라고 거짓말을 했다”며 “중간 정산한 퇴직금과 함께 2000만원을 대출받아 증자 대금으로 넣었는데 결국 퇴직금도 날리고 빚까지 떠안게 됐다”고 허탈해 했다.
직원들은 영업정지 전까지 김 회장이 외자 유치를 진행 중인 것처럼 행동하며 황제처럼 군림한 점에도 분통을 터뜨렸다. 다른 영업부 직원은 “김 회장은 최근 들어 제주 본점에는 얼굴도 비추지 않고 서울 본부에서 지점마다 연결된 스피커를 통해 직원들에게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큰소리 쳤다”며 “어쩌다 본점에 들르면 입구부터 직원들이 도열해 있어야 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예금보험공사에서 파견나온 최병호 감독관은 “김 회장의 전횡으로 인해 직원들의 분노와 허탈감이 극에 달한 것 같다”며 “우량 금융사에 인수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직원들의 동요를 막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