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 바다와 주황빛 지붕…동화같은 '아드리아해의 진주'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베네치아와 경쟁한 무역도시
1400여년 역사 흔적 생생

곳곳에 남아있는 내전의 상처
5개 대표성당에 볼거리 가득

이런 조화는 누가 생각해냈을까. 영국 시인 바이런이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불렀던 곳. 발칸반도 아드리아해의 청량한 쪽빛과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옛 시가지에 펼쳐진 주황색의 조화다.

달마티아 해안에 자리한 두브로브니크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경쟁한 아드리아 해안 유일의 해상무역 도시국가였다. 9세기부터 발칸과 이탈리아의 무역 중심지로 막강한 부를 축적했고, 11~13세기에는 금·은 수출항으로 번성했다. 유럽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히는 이곳엔 관광객만 북적이는 게 아니다. 1400년을 이어온 집에서 사람들은 두브로브니크 특유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빨래가 널려 있는 유적지

두브로브니크 옛 시가지는 크로아티아 남쪽에 있는 고성(古城)도시다. 바다를 향한 남쪽을 제외하고 동·서·북쪽에 입구가 하나씩 있다. 동문인 필레게이트의 교통이 편리해 보통 여기서 투어를 시작한다.필레게이트를 지나 성 안으로 들어서면 중심 도로인 스트라둔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대리석을 깔아놓은 292m의 이 거리는 원래 해협이었다. 성을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출입세 대신 돌을 받아 그걸로 해협을 메웠다. 그간의 세월이 말해주듯 스트라둔 거리의 대리석은 반질반질해져 건물과 사람들이 비칠 정도다.

옛 시가지의 특징은 살아 있는 유적지라는 것. 식당이나 분수대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 수거일에 맞춰 내놓은 쓰레기 봉투, 여기저기 널려 있는 빨래 등이 정겹다. 필레게이트를 지나 오른쪽에 있는 오노프리오 분수에선 아직도 물이 나온다. 그 맞은편 프란체스카수도원 안에 있는 유럽 최초의 약국은 1317년부터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18세기에 지어진 성(聖)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성당 옆 신학대학에서도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두브로브니크의 성문과 주요 건물 정면 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도시의 수호성인인 성(聖) 블라시오다. 278년 아르메니아에서 태어난 성 블라시오는 316년 커다란 쇠빗으로 온몸을 무참하게 긁히는 고통을 당하며 순교했다. 10세기께 옛 시가지에 있는 성 스테판성당의 스토이코 신부 꿈에 나타나 “지금 베네치아 군대가 배를 타고 이곳을 정복하러 오고 있다”고 알려 도시를 구한 것으로 전해진다.◆내전의 상처와 나이트클럽

주황색 지붕의 진풍경을 보고 싶다면 성곽 투어가 제격이다. 요금은 70쿠나(1만4000원). 투어 도중 검사를 하기 때문에 표를 버리면 안 된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주황색 지붕들이 오밀조밀 들어선 모습이 동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건물 곳곳에 구멍이 나 있거나 지붕이 없는 집들도 보인다. 1991년 크로아티아가 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후 벌어진 내전의 상처다. 당시 내전으로 800여개의 건물 중 68%가 무너졌다. 서구 지식인들이 포탄에 맞서 인간띠를 형성해 문화유산 파괴에 반대하기도 했다. 유네스코는 1000만달러를 들여 이곳을 복구했고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성 외곽엔 5개의 요새가 있다. 그 중 서쪽 플로체게이트 근처의 레블린 요새는 현재 나이트클럽이다. 영화 ‘트리플 엑스’에서처럼 고성(古城) 나이트를 즐길 수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첨탑 5개

성곽에서 내려다보면 5개의 우뚝 솟은 탑이 보인다. 성당이다. 세르비아정교회성당, 성 블라시오성당, 성모승천성당, 도미니크수도원성당, 성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성당. 내전의 불씨가 됐던 종교갈등도 확인할 수 있다. 옛 시가지 내에 가톨릭 성당과 정교회 성당이 함께 있는데 크로아티아 국민의 88%는 가톨릭, 4.5%는 세르비아정교 신자다.

이 중 사연이 많은 성당은 성모승천성당이다. 12세기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가 제2차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나 배가 난파돼 옛 시가지 인근 로크럼 섬에 도착했다. 그는 신에게 감사하며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다시 지었다. 1667년 지진으로 일부 소실되고 1706년 화재로 그을린 흔적이 아직도 있다. 1713년 바로크 양식으로 복원됐다.

성당이나 수도원마다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다. 크로아티아의 축구 영웅 수케르 얘기를 나누거나 싼 책자 하나만 사면 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옛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북쪽 부자게이트를 나와 5분 정도 올라가면 매표소가 있다. 요금은 왕복 100쿠나.

정상에는 나폴레옹이 1808년 정복 기념으로 세운 십자가가 있다. 원래는 나무 십자가였으나 화재로 불탄 뒤 대리석으로 다시 세웠다.

[여행팁] 문어·토마토소스 요리…오징어 튀김도 별미

달마티아 지방에는 해산물요리가 많고 이탈리아식과 그리스식을 섞어서 만든 음식이 주류를 이룬다. 문어를 토마토소스와 함께 볶아 만든 베이크트옥토퍼스가 대표적이다. 뚝배기 같은 그릇에 내오는데 한국사람 입맛에도 잘 맞다. 미슐랭 레스토랑인 루신칸툰이 이 음식으로 유명하다.오징어 튀김인 칼라마리아도 즐겨먹는 음식이다.

옛 시가지의 성당이나 궁의 유물 전시관, 박물관에선 관람료를 따로 내야 한다. 자유이용권과 비슷한 ‘두브로브니크 카드’를 사면 5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5개 박물관과 2개 전시관, 성곽투어를 이용할 수 있다. 1일권 130쿠나, 3일권 180쿠나, 7일권 220쿠나(1쿠나=200원)로 장기권을 구매할수록 저렴하다. 카드를 사면 12세 이하 동반 어린이는 무료다.직항노선이 없어 유럽의 주요 허브공항에서 두 번 갈아타야 한다. 프랑크푸르트~자그레브(크로아티아의 수도)~두브로브니크로 가면 약 14시간30분 걸린다.

두브로브니크=정성택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