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천 한일유소년야구육성기금 이사장 "나는 건강중독자…뇌경색 극복 비결 책도 쓸 것"

어떻게 지내십니까 - '불멸의 4할타자' 백인천 한일유소년야구육성기금 이사장

1996년 갑자기 찾아온 뇌경색…매일 15㎞ 자전거로 건강 회복
8월 양평서 소년가장 야구캠프…"남은 인생 어린후배 육성 올인"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원년인 그 해 4할대 타율(4할1푼2리)이 나왔다. 이 타율은 프로야구 31년째를 맞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전설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년간 선수로 뛴 일본 프로야구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수 위’ 실력을 선보였던 백인천 선수 얘기다. 당시 국내 팬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환호는 오래 가지 않았다. 이혼, 슬럼프, 병마와의 오랜 싸움 등이 이어지며 그는 15년 이상 구장을 떠나 있어야 했다.

1996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을 끝으로 야구 배트를 손에서 놨던 ‘영원한 4할 타자’가 다시 돌아왔다. 어린이 야구 육성 사업을 통해서다. 병마를 이겨내고 다시 활동에 나선 백인천 한일유소년야구육성기금 이사장(69)을 지난 22일 고양시 풍동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하얀 수염이 턱을 덮었지만 배트를 쥐고 웃음짓는 얼굴은 1980년대 그라운드를 달리던 그때 그대로였다. 백 이사장은 오는 8월10~12일 경기도 양평 VIP레저타운에서 (재)바보의나눔(이사장 염수정 주교)과 함께 여는 소년소녀가장 야구캠프 얘기부터 꺼냈다. “요즘 프로야구가 인기지만, 야구를 하고 싶어도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못하는 어린이가 의외로 많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는 대뜸 ‘중독론’으로 말을 이어갔다. “살아가면서 흔히 ‘중독’이란 말을 하는데, 나는 야구 중독자였습니다. 지금은 건강 중독자예요. 이 단계에 가면 무엇을 하든 자기가 하는 일에 성공합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걸 가르치고 싶어요.”

프로야구 선수와 감독으로서 화려한 시절을 보낸 백 이사장은 1996년 삼성 라이온즈 감독때 찾아온 뇌경색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처음엔 왼쪽 팔다리가 모두 마비됐어요. 하지만 야구에서 ‘프로’를 보여줬으니 건강에서도 프로가 되자고 다짐했죠.” 이젠 매일 집 근처 호수공원에서 사이클을 15㎞씩 타는 등 체력을 많이 회복했다고 했다.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그는 지난해 10월 ‘백인천야구아카데미’ 인터넷 카페를 열었다. 이어 최근 비영리 단체인 한일유소년야구육성기금을 설립했다. 기금에는 박영구 넥손 대표, 홍영천 스포츠클럽 서울레저 대표, 혜정 스님(재단법인 천국사 대표) 등 각계 인사들이 후원자로 참여하고 있다. 이 단체를 통해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 야구 지망생들을 돕는다는 계획이다.

백 이사장에게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와 그가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당시 상황을 물었다. “1962년 19세 때입니다. 경동고를 졸업한 뒤 일본 프로야구에 도전했죠. 앞선 기술을 배우고 싶었어요.” 그러나 당시의 비판은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 ‘한국 대표 선수가 돈 때문에 일본으로 팔려간다. 매국노다’ 이런 식이었어요.”

그는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 땐 한국야구위원회에 일본 자료를 가져다 운영 노하우를 제공했다. “MBC 청룡 감독 겸 선수로 뛰면서 전지훈련을 가기 위해 공 200타(1타는 공 12개)와 배트 50자루를 신청했어요. ‘장사하려는 것 아니냐’며 결재를 안 해주는 거예요. 그 정도로 몰랐어요. 하하.” 그는 요즘 자신의 야구인생을 담은 자서전도 쓰고 있다. 이르면 내달 출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자신의 뇌경색 극복기 등 15년에 걸친 건강관리 노하우를 담은 책도 펴낼 예정이다.

홍성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