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여초(女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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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성비(性比)에 관해서는 여러 속설이 있다. 대표적인 건 역사상 성비가 크게 깨질 때마다, 특히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많을 때면 늘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짝이 없는 젊은 남성들이 많은 사회는 자연히 공격적인 에너지가 넘치고 이런 불만 내지 불안이 바깥으로 폭발해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식이다.
영화 ‘가을의 전설’에선 이런 속설이 그럴듯하게 그려진다. 아버지와 3형제가 사는 시골마을에 어느날 막내가 약혼녀를 데리고 나타나는데 3형제 모두 그 여인을 사랑해 결국 집안 전체가 불행해진다는 줄거리다. 이 영화는 명장면과 OST로 유명하지만 보기에 따라선 극단적인 성비 불균형이 전쟁까지는 아니어도 한 가정을 결딴나게 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물론 남성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으면 사회가 불안해진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 없다. 다만 이런 생각이 맞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나라에선 당분간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3년 후인 2015년이면 여성인구가 남성을 뛰어넘는 ‘여초(女超)사회’가 된다는 통계청 발표가 나왔기 때문이다. 장래 인구 추계를 보면 2015년 남성은 2530만3000명, 여성은 2531만5000명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60년 이후 처음으로 여자가 더 많은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출생성비(여아 100명당 남아 수)는 2005~2010년 106.9로 여전히 아들이 많이 태어나고 있지만 여성의 기대 수명(2010년 84.1세)이 남성(77.2세)보다 길어 여성 노인 인구 급증으로 성비가 사상 처음 역전된다는 분석이다. 남아선호의 퇴조로 출생성비가 계속 떨어지는 추세여서 여초 현상은 앞으로 점점 심화돼 2030년에는 전체 성비가 98.6까지 낮아진다는 전망이다.
여자가 점점 많아진다고 하니 사회 안정은 둘째치고 신부감을 못 구해 고민인 남성들에게 희소식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아직 환호성을 지르기엔 이르다. 혼인 적령기(남 29~33세, 여 26~30세)의 성비는 올해 123.5로 여전히 엄청난 남초(男超)이고 당분간 급격히 낮아지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혼인 적령기를 맞은 청춘남녀 대부분이 남아선호가 한창이던 1980년대 출생자들인 탓이다. 우리나라의 출생성비가 자연상태(105~107)로 내려온 것이 2007년부터라고 하니 대략 2037년께에나 혼인 적령기 남녀 수가 엇비슷해질 것이란다. 3년 뒤면 여자가 더 많아지고 앞으로도 20년 넘게 신랑감이 신부감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니 이래저래 여자들만 좋은 거 아닌지 모르겠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