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포경(捕鯨)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정호승 ‘고래를 위하여’)

미지의 망망대해를 헤쳐 가는 고래의 장대한 모습은 젊음의 고뇌에 대한 표상이었다. 최인호 소설 ‘고래사냥’에 고래 한 마리 등장하지 않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를 7080세대는 그야말로 고래고래 불렀다. 반면 허먼 멜빌이 쓴 ‘모비딕(백경)’에선 인간의 집념과 복수의지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상징이다.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고래의 형상을 한 야훼의 적이다. 신화나 설화에도 종종 고래가 등장한다. 구약성서 요나서에서 야훼의 분노로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고래 뱃속에서 사흘을 살았다. 삼국유사의 ‘연오랑 세오녀’에선 미역을 따러 바위에 오른 연오랑이 바위가 움직여 일본으로 가게 됐는데, 이 바위가 실은 귀신고래라는 해석이 있다.

고래는 대략 3000만~5000만년 전 등장한 지구상 최대의 포유류다. 80여종이 있고 가장 큰 대왕고래는 무게 200t, 길이 33m에 이른다. 국내 연안에도 상괭이(토종 돌고래) 밍크고래 등 8종이 서식한다.

인류 최초의 포경인은 스페인 북부 바스크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04년 영국 BBC가 인류 최초로 고래잡이를 한 곳이 한반도라고 보도해 큰 관심을 모았다. BBC가 제시한 근거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 이 암각화는 BC 6000년께부터 고래를 잡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고래 관련 그림이 전체의 5분의 1인 58점이나 된다. 우리말에 고래등 같은 집, 술고래, 고래힘줄 같은 고집 등의 언어습관을 봐도 고래는 조상들과 관계가 밀접했음을 알 수 있다. 정부가 최근 국제포경위원회(IWC) 연례회의에서 과학 목적의 포경을 재개하겠다고 통보해 논란을 빚고 있다. 멸종위기의 고래 보호를 위해 1986년 포경을 금지한 지 26년 만이다. 현재 ‘과학 포경’은 일본뿐이며 노르웨이 아이슬란드는 IWC의 포경금지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포경 전진기지였던 울산 장생포 주민들은 대환영이다. 오랜 고래고기 식문화와, 연안의 고래가 8만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돼 어족자원 피해가 큰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일본처럼 눈가리고 아웅식 포경은 국제사회의 비난만 살 뿐이며, 과학 목적이라면 잡지 않고도 가능하다고 맞선다.

호주 뉴질랜드는 즉각 반대를 표명했고 미국도 우려의사를 밝혔다. 일부 국제단체는 포경선에 대한 공격까지 경고했다. 굳이 비난을 자초하며 포경을 고집할 이유가 있는지.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