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獨·佛 국채 마이너스 금리로 간 사연

독일과 프랑스가 최근 마이너스 금리로 국채를 발행했다. 재정위기국의 국채 금리가 구제금융 전 단계인 연 7%까지 치솟은 것과는 천양지차다. 마이너스 금리란 투자자가 이자를 받기는커녕 만기 때 받을 원금보다 비싼 가격에, 즉 웃돈을 주고 국채를 사는 것을 뜻한다. 유럽위기 이후 안전자산인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등 초우량국 국채가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된 적은 있어도, 재정위기국 후보였던 프랑스까지 마이너스 금리로 60억유로(8조4000억원)를 조달한 것은 처음이다. 스페인 이탈리아보다는 안전하다는 것이 이유라니 황당할 따름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유로존 경제가 중병에 걸렸음을 드러내는 극단적인 증거다. 미래에 대한 기대나 전망 대신 무기력과 절망만 가득하다는 얘기다. 그동안 풀어댄 돈이 금융시장에 흘러넘치는 데도 신용 공포는 극에 달해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에 예치하는 하루짜리 예금 금리가 0%인데도 무려 8280억유로(1160조원)나 잠겨 있을 정도다. 돈을 풀어도 금융시장에서만 맴돌 뿐이다. 선진국들의 재정·통화 확대가 실물경기 회복으론 전혀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유로존의 현 주소는 돈 풀어 경기를 살린다는 케인시안 포퓰리즘의 파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경제위기는 생산성 향상을 통한 성장 잠재력의 회복 없이는 그 어떤 방안으로도 해결될 수 없다. 유로존 위기라고 해도 다를 바 없다. 생산성이 낮은 위기국가들이 고통을 감내하려 하지 않는 한 이 위기가 언제 끝날지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무조건 돈부터 풀라는 사이비 신화가 만연해 있다. 자본주의에 가장 치명적인 위험은 화폐의 타락이다. 그 뿌리는 물론 포퓰리즘에 편승한 정치의 타락이다. 돈을 빌려주면서 이자를 주는 뒤집힌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