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증권사를 어찌하오리까

하영춘 증권부장 hayoung@hankyung.com
한 증권사가 갖고 있는 골프장 회원권 가치는 지난 3월 말 현재 115억원이다. 작년 3월 말과 똑같다. 1년 동안 회원권값이 평균 18% 하락했는데도 그렇다. 시세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탓이다. 이 회사의 2011회계연도(2010년 4월~2011년 3월) 순이익은 20억원. 회원권 평가손실을 반영했다면 적자를 냈을지도 모른다. 국제회계기준(IFRS)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가 장부가치를 고수했던 것은 흑자결산을 위해서라는 추측이 나온다.

증권사 절반이 적자위기지난 4월부터 시작된 2012회계연도에는 이런 증권사가 더욱 늘어날 것이란 위기감이 팽배하다. 적자를 내는 증권사가 전체의 절반에 달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증권사 경영환경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증권사는 수익의 절반 이상을 주식 위탁매매나 펀드 판매를 통해 얻는다. 거래나 판매가 많아질수록 수익이 늘어난다. 최근 움직임은 정반대다. 주식거래가 확 줄었다. 7월 들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하루평균 거래대금은 4조9000억원에 그치고 있다. 작년 8월(10조7000억원)의 절반 이하다. 6조5000억원이 넘어야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감안하면 증권사들이 죽는 소리를 할 만하다. 파생상품 거래와 펀드판매도 감소 추세다.

그렇다고 자기매매나 투자은행(IB), 자산관리 관련 수익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온갖 묘안을 짜내 증권사 자체 자금을 굴리고 있지만, 증시가 죽을 쑤는 상황에서 수익을 내는 건 버겁다. 경기 부진으로 기업공개(IPO)나 기업 인수·합병(M&A)도 확연히 줄고 있다. 자산관리를 강화한다고 애써보지만 경쟁력을 따지면 은행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증권사들의 집단 위기는 다분히 자업자득 측면이 강하다. 증권사들은 증시가 좋아 돈을 벌면 성과급 잔치를 벌인다. 자문형 랩, 주가연계증권(ELS) 등 돈이 된다 싶으면 모두가 뛰어들어 진흙탕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미래를 위한 투자, 신사업 개발, 해외진출은 서류상 말장난에 불과하다.

금융당국의 결자해지도 중요

그렇다고 증권사들만 탓할 일도 아니다. 증권사 경영구조는 은행과는 다르다. 삼성증권 사장을 지낸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의 말을 빌리면 ‘월급쟁이와 막일꾼만큼의 차이’다. 은행은 문을 닫아도 꼬박꼬박 대출이자를 받는다. 증권사는 거래가 일어나야만 수익을 얻는다. 아무리 빼어난 최고경영자(CEO)라도 대외 변수에 따른 증시 침체와 거래 감소를 막을 재주는 없다. 증권사를 이런 위기로 내몬 데는 금융당국의 책임도 상당하다. 외환위기(1997년) 직전 36개와 30개이던 토종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이달 현재 50개와 82개로 늘었다. 과당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IB 업무에 미래 먹을거리가 있다며 자본을 늘리도록 했다가 나몰라라 하는 것도 금융당국이다. 펀드 판매 등 증권사 고유영역을 없애버리고, 각종 수수료를 내리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도 금융당국이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20일 증권사 사장들과 간담회를 갖는다고 한다. 감독당국과 업계가 머리를 맞댄다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증시를 살리는 것과 증권사를 살리는 것은 다르다는 점이다. 규제를 완화해 증시를 살리되, 증권사 간 경쟁을 유도해 자발적인 M&A가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멀리 보아 증권사를 살리는 일이다. 골프장 회원권값으로 흑자와 적자를 판가름짓는 증권사가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하영춘 증권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