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국가발전계획 맡은 한국인 총장

이장규 아다마과기대 총장

부임 열달만에 '과학韓流' 바람
박홍이·김영균 교수도 스카우트
에티오피아 정부와 컨설팅 계약
“에티오피아 모든 부처, 모든 장관들이 한국을 닮고 싶어 합니다. 2025년까지 에티오피아 국가 중장기 발전 계획을 세우는 것도 저에게 맡겼습니다.”

지난해 10월 한국인 최초로 아프리카 국립대 총장을 맡은 이장규 아다마과기대 총장(66·사진)이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했다. 최근 서울 불광동 작은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이 총장은 ‘과학 한류’ 얘기부터 꺼냈다. 귀국 직전 대학 발전계획뿐만 아니라 에티오피아의 중장기 국가발전 전략까지 맡게 되는 등 과학 한류가 확산될 조짐이라는 설명이다. “우리의 지식경제부와 비슷한 에티오피아 산업부와 컨설팅 계약을 맺었어요. 에티오피아 전체적으로 한국을 벤치마킹하자는 분위기에다 저와 계약하면 과학 등의 분야에서 한국 전문가들과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이 총장은 올 연말까지 에티오피아 산업발전을 위한 로드맵과 핵심전략 등을 정하고 이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국가기관 설립 등의 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해외에서 특정 분야가 아닌 국가 전반의 발전 전략을 한국인이 세우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이 총장의 설명이다.

아프리카 동북부에 있는 에티오피아는 작년 말 현재 인구 8800만명, 1인당 국내총생산(GDP) 350달러로, 한국의 1960년대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아프리카 국가로는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해왔고 6·25전쟁 때는 보병 1개 대대를 한국에 파견하는 등 ‘자존심’이 강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 총장 영입도 우리 정부의 공적개발원조(ODA)가 아니라 현지 정부가 교육발전을 위해 직접 돈을 투자해 이뤄졌다.

이 총장은 에티오피아의 ‘실리콘밸리’를 만들기 위해 기업들과 공동 연구를 하는 ‘연구공원’을 만들었다. 산업기술 발전을 고대해온 에티오피아 정부는 70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자금을 투자하기로 했고 현지 시멘트업체 3곳이 컨소시엄을 구성, 연구에 참여하기로 했다. 공대를 보완하기 위해 재료공학과를 신설했고 기초과학 발전을 위해 자연과학대도 분리할 예정이다. 이 총장이 10개월 만에 상당한 변화를 이끌어 내자 에티오피아 정부는 한국 학자들을 추가로 영입하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5월 박홍이 전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68)가 아다마과기대 자연과학대 학장으로 부임했고 이달에는 김영균 고려대 그린스쿨대학원 교수(64)가 아디스아바바대의 기술원장에 선임됐다. 아다마과기대 학장 3명을 한국인으로 더 뽑을 예정이며 북부 바다하르대 공학대학원, 섬유대학원에서도 한국인 원장을 찾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에티오피아는 그간 독일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교육시스템을 만들어왔으나 최근 한국형 모델로 바꿔 나가고 있다고 이 총장은 밝혔다. 아다마과기대 총장도 이전엔 독일인이었으나 이 총장으로 교체했고 북부 다른 대학에서도 독일인 총장의 뒤를 이을 한국 학자를 찾고 있다. 이 총장은 “에티오피아에서는 산업 경제 발전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반 갖추기’가 키워드”라며 “유럽과 미국한테 많은 원조를 받았지만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배고픔을 이겨낸 한국의 경험”이라고 지적했다.

이 총장은 집짓기, 우물파기, 음식 지원 등 기존 선진국 모델을 따라가는 ODA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선진국들은 교육분야 ODA 때 문맹퇴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현지 나라들이 원하는 것은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고등교육”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을 모델로 삼는 것은 ‘바닥’에서 발전해온 경험을 배우고 싶은 것”이라며 “우리의 압축 발전 경험을 전해주는 한국형 ODA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충남 공주 출신인 이 총장은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 대통령 자문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