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보호 덫'에 걸린 중국 공공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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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둥시 日제지회사 폐수처리 시설 공사
주민들 강력 반발로 취소…반일감정도 작용
중국 장쑤(江蘇)성 치둥(啓東)시에서 일본 기업의 하수처리를 위해 시정부가 추진하던 공공사업이 주민들의 격렬한 항의시위로 무산됐다. 환경오염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과 일본 기업에 대한 반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 대규모 시위를 유발한 것으로 보인다.
28일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치둥시를 관할하는 난퉁(南通)시 정부는 치둥시와 바다를 잇는 하수관 건설 프로젝트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치둥시 주민 1000여명은 하수관 건설이 오염물질을 바다로 배출해 환경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며 정부 청사 앞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일부 시위대는 시 청사에 진입해 사무기기를 파손했고 청사 앞에 있던 차량도 전복시켰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 등에서는 주민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사진들이 올라왔다. 중국 정부는 즉각 웨이보에서 치둥시 등의 검색어를 차단했다.
시위가 격화되자 장궈화 난퉁시장이 TV에 나와 하수관 건설을 취소하겠다고 밝혀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그러나 시위과정에서 20여명이 다쳐 병원에 실려가고 100여명이 체포됐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전했다.
문제의 하수관은 일본기업인 오지(王子)제지에서 나오는 폐수를 바다로 버리기 위해 계획된 것으로 2010년부터 주민들의 반발을 사왔다. 그러나 시 당국은 경제 개발을 이유로 하수관 건설을 강행해왔다.이와 관련,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정부의 환경대책에 대한 불신 외에도 뿌리 깊은 반일 감정이 사태를 키웠다고 분석했다. 일부 시위대는 하수관 건설프로젝트의 주체가 난퉁시인데도 “오지제지의 오수 배출을 저지하라”고 쓰여진 옷을 입고 시위에 참가했으며 “정부가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긴다”고 외치기도 했다. 현장에서 취재를 하던 아사히신문 기자는 현지 경찰에 카메라와 기자증을 빼앗기고 폭행까지 당했다.
오지제지가 배출하는 폐수에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다는 일부 보도도 주민들을 지극했다. 그러나 오지제지는 성명을 내고 “그런 보도는 근거가 없는 것”이라며 “우리는 중국의 국가기준에 따라 정수처리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환경오염 반대시위로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공장들이 폐쇄되거나 관련 프로젝트들이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3일에는 중국 쓰촨성 스팡시에 건설될 예정이었던 16억달러 규모의 금속공장 건설이 주민들의 반대 시위로 무산됐다. 당시 스팡시 시위대도 관용차를 부수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결국 시 당국은 공장건설 프로젝트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지난해에는 다롄에서 유독물질을 배출한 화학공장이 주민들의 시위로 결국 폐쇄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환경 오염을 이유로 중국 정부가 거대 개발 프로젝트들을 잇달아 취소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그만큼 환경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평가다.
WSJ는 “중국 부유층이 중국을 떠나는 이유로 환경오염을 꼽을 정도로 환경문제가 중국 정부의 현안으로 부상했다”며 “정부는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 비중을 줄이고 환경규제를 강화하는 등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김태완 특파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