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모든 것을 범죄화하는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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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자유 불법화하는 입법홍수허핑턴 포스트의 평론가 래들리 발코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과잉법치 국가다. 의회는 법을 과도하게 만들고 행정부는 과잉 집행한다. 1980년대 3000개였던 범죄 수는 1990년대에 4500개로 늘어났다. 주법에 따라 유죄로 판결이 난 행위가 연방법에 의해 다시 재판받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미시간 주의 한 의원은 남녀 데이트 사이트에 자기소개서를 허위로 올리면 처벌하는 법률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사법 영역을 公法화하는 큰 오류
정규재 논설실장 jkj@hankyung.com
자주 영화에 등장하는 특수기동대(SWAT)는 과잉 출동에 강압적 단속으로 유명하다. 1980년대 연 1만건 이하였던 출동 건수는 2005년 5만건으로 급증했다. 무고한 시민이 사망하는 건수도 다반사다. 더 큰 문제는 경제 활동을 범죄로 정하는 법규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로 소규모 기업이라도 경영하려면 거미줄 같은 연방법과 주법을 필시 어기게 된다. 기업 활동을 규제하는 연방 규제만도 1만개에서 3만개다. 발코는 미국의 이런 현상을 ‘거의 모든 것을 범죄화하는 점증하는 현상(The Increasing Criminalization of Nearly Everything)’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발코가 혹시 한국의 사정을 알게 된다면 기절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이야말로 입법 과잉이요, 법에도 없는 행정규제의 과잉이며, ‘거의 모든 것’이 아니라 ‘아예 모든 것’의 불법화를 추진 중이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소위 경제민주화 입법은 모든 것을 불법화하는 결정판이다. 민주당의 6개 경제민주화 법안도 그렇다. 기업들이 십시일반으로 자본금을 갹출하는 순환 출자부터 불법으로 선언된다. 출자는 불법행위이기 때문에 당연히 의결권도 금지된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계약의 자유도 불법이다. 하도급 거래 법안들은 계약체결의 자유와 영업의 자유를 예비단속의 대상으로 삼는다. 횡령 배임은 확실하게 징역을 살리기 위해 형량 하한선을 7년으로 올린다. 법관들이 작량감경하여 집행유예를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기업들의 출자도 범죄다. 순자산의 30% 이상 출자하는 것은 정부가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만일 초과분이 해소되지 않으면 이는 장물로 보고 사용권(의결권)을 박탈한다.
경제활동의 자유를 원천적인 불법으로 만들기 위해 경제행위 대부분을 국가의 의무로 선언한다. 예를 들어 국민의 행복, 중소기업 발전, 경제의 성장과 안정, 의식주의 보호는 이제 기업과 국민 각자의 노력이 아니라 국가의 의무로 전환된다. 심지어 건전한 소비생활을 유지할 것(헌법 제124조)도 국민의 의무로 이미 선언되지 않았나. 계약의 자유와 사법적 질서를 공정거래상 공법의 영역으로 재정의하여 개입하고-이런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기업의 판단을 정부의 판단으로 대체하며, 기업행위의 부당성을 법적 판단이 아니라 당연위법의 원칙으로 갈아끼운 것이 경제민주화다. 이는 사법부 아닌 정부가 직접 재판하는 사법권의 말살과 다를 바 없다. 이게 바로 경제민주화의 실체다.
경제활동의 대부분은 지금도 위법이다. 지배구조를 뜯어고친다는 의결권 제한 규정의 대부분, 자율적인 분배규칙을 일감몰아주기로 보고 이를 불법화하기, 사업할 자유를 부정하고 이를 영역별로 나누어 중기영역으로 선포하기 등 거의 모든 경제활동은 불법 아니면 위법이다. 급기야 새누리당은 이름에도 걸맞게 엄벌주의 중형주의를 선포하면서 경제활동의 전면적인 범죄화를 획책하는 중이다. 민주당이 실형 7년으로 한 것을 15년으로 끌어올려 횡령배임을 살인죄보다 중형으로 처벌하자는 데 이르면 더는 할 말이 없어진다. 광폭한 질주다. 허가 받지 않은 모든 경제활동을 범죄로 선언하는 기괴한 국가다.물론 이유가 없을 수 없다. SWAT는 더 많은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고 대부분 검찰 기구들도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이를 특수범죄화하면서 예산과 조직을 확보한다. 한국도 다를 것은 없다. 더 많은 범죄를 만들어내야 관료와 정치인들은 재벌을 손아귀에 넣고 주무를 수 있다. 언젠가는 그런 동화 속 악당들의 나라에 대해 회고할 날이 있을 것이다. 16대에 1912건이었던 의원법안 발의 건수는 17대에서 6387건, 18대에서 1만2220건으로 불어났다. 19대 들어서는 의원들의 법안 제출 건수가 18대보다 또 3배나 많아지는 중이다. 어리석음은 때로 집단 광기의 원천이 된다.
정규재 논설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