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Hi! CEO] 모자 두 개면 어떠랴…무질서를 두려워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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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설 편집국 미래전략실장·한경아카데미 원장위기 대응에는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확실히 빠르다. 그들은 지금의 경제상황을 2008년 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게 보고 있는 듯하다. 특히 경제위기의 원인을 금융회사 탓으로 보는 곱지 않은 시각과 그에 따라 속도를 높이는 규제 강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만난 외국계 금융사의 한 임원은 “정말 위기인 것 같다. 최고급 인력에까지 메스를 대고 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조직 전체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이 글로벌 차원에서 ‘신속하고 과감하게’ 전개되고 있다.일부 기능은 임원이라도 스스로 원하면 파트타임도 가능하게 할 정도다. 연봉 2억원을 받던 사람이 1주일에 절반만 일하겠다고 하면 임금을 반으로 깎는 식이다. 해당 임원은 나머지 절반은 다른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도 좋다고 하니 조직문화를 강조하던 글로벌 회사로서는 고육책이 아닐 수 없다.
인건비 절감을 위한 대책으로 가장 유행하는 것은 ‘더블 해팅(double hatting·모자 두 개 쓰기)’이다.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겸직을 시켜 간부들의 머릿수를 줄이는 전략이다. 물론 급여는 늘어나지 않는다. 이런 추세 속에서 두 개의 모자가 아니라 서너 개의 모자를 써야 하는 ‘멀티플 해팅(multiple hatting)’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금융회사들의 대응 방식은 금세 제조업을 비롯한 많은 회사에 전파될 가능성이 높다. 당신은 어떤가. 모자를 두 개 쓰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까지 맡게 돼 큰 낭패를 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기는가.그러나 두려워 말라.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선 벤처기업들은 처음에 2~3명이 시작하면서 창업자들 모두 모자를 수십개씩 쓰고 일했다. 이런 혼돈 속에서 창의성이 나오고 업종을 넘나드는 혁신 제품이 보인다. 새로운 모자를 더 쓰게 되면 의외로 이제까지 발휘되지 않았던 잠재력을 찾아내는 덤도 따라올지 모른다.
권영설 편집국 미래전략실장·한경아카데미 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