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영국이 관치금융 거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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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보사태' 불구 '자율' 더 신뢰유럽에서 여름 휴가철이 시작될 무렵인 6월 말, 영국 금융가에는 리보(LIBOR) 조작 파문이 일었다. 영국 금융감독청(FSA)이 조용히 금리조작 여부를 수년간 조사한 결과 6월27일 영국 4대 은행 중 하나인 바클레이즈은행에 거액의 벌금이 부과됐다. 전 세계에 통용되는 금융상품의 30% 정도에 적용되는 기준금리인 리보의 신용은 땅에 떨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몇 주 지나지 않아 리보조작은 언론에 더 이상 보도되지도 않을 만큼 일단락됐고, 금융계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금융감독청에서 다른 은행들의 담합여부를 계속 조사 중이라고는 하지만, 초기와 같은 혼란은 되풀이되지 않고 있다.
신속한 공개조사 금융불안 차단
'시장 자율이 경쟁력' 교훈 삼길"
신희란 < 在英변호사·금융법 >
이는 영국 금융제도에 대한 신뢰 상실이 금융혼란을 초래하고 나아가 영국 금융산업의 국제적 위상 저하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의 결과다. 시장을 교란시킨 행위에 대한 엄정한 조사 및 단죄와는 별개로, 일련의 수습과정을 통해 영국 금융의 힘을 엿볼 수 있다. 첫째는 신속한 공개진상조사. 바클레이즈은행의 벌금부과가 발표된 직후인 7월2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지시로 의회 청문회가 시작돼 관련자들의 증언이 언론에 모두 발표됐다. 소문과 억측의 가능성이 처음부터 배제된 것이다. 청문회 기간 동안 밝혀진 사실에 따라 바클레이즈 회장, 최고경영자(CEO) 및 최고운영책임자(COO)가 금리조작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모두 사퇴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관치금융 가능성을 확실하게 배제한 것이다. 정부 역할은 금융감독에 그칠 뿐 직접적인 ‘간섭’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폴 터커 영국중앙은행 부총재는 자신의 금리설정 관여 여부가 간접적으로 제기되자 자발적으로 의회 청문회에 출석, 금리설정에 전혀 간섭한 일이 없음을 해명했다. 금리는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하며, 국가나 국책은행의 불필요한 개입은 불법조작만큼이나 금융산업 신뢰도 저하를 초래한다는 국제 금융계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금융감독제도의 정비. 의회 청문회를 시작하던 7월2일,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은 위틀리 법제개정위원회(The Wheatley Review)를 개설했다. 이 법제개정위원회는 한 달 기한으로 8월10일까지 조사결과 및 법제개정 추천안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해야 하고, 이 개정법안은 4주간의 공개질의 과정을 거쳐 올해 말 발효될 금융개혁법안(Financial Services Bill)에 포함될 예정이다. 법제개정 속도가 느린 편인 영국에서 극도로 숨가쁜 일정이다. 이는 리보사태로 인한 금융계 동요가 금융산업에 대한 신뢰저하 및 금융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과 자국 금융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방지하기 위한 영국 정부의 적극 공세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캐머런 총리는 7월2일 의회 청문회를 시작하면서 “영국의 금융제도가 다른 어느 금융 중심지보다도 더욱 철저하고 투명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철저하고 투명한 금융감독 제도가 금융산업 국제경쟁력 향상의 핵심임을 파악한 발언이다.
위틀리 법제개정위원회가 현재 고려하고 있는 대안들을 엿보면 금융감독청의 허가를 받은 사람만이 금리제출을 할 수 있게 하는 방안, 금리담합 및 조작을 시장교란 행위로 간주해 민사 및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 그리고 현재 민간단체인 영국은행인협회(British Bankers’ Association)에서 주관하고 있는 리보 설정 과정의 자율감독 기능을 더 효과적으로 개선할 방안 등을 모색 중이다. 금리제출자들 개개인에게 책임을 묻되 금리설정 및 감독기능은 계속해서 민간에 맡긴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혈맥인 돈을 다루는 산업이 바로 금융인 만큼, 작은 일탈이 어마어마한 개인적 이득으로 직결될 수 있어 그만큼 부패의 유혹이 크다. 그런 만큼 영국의 리보사태와 한국의 CD금리 담합여부가 거의 동시에 제기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원천봉쇄할 수 없다면 더욱 중요한 것은 사후처리다.
신희란 < 在英변호사·금융법 twitter.com/heeransh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