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R&D 예산 '구조조정'

후보물질 분야 대폭 삭감…글로벌 신약은 투자 확대
정부가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예산에 대해 대규모 교통정리에 나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악화된 제약산업의 위기 탈출구를 찾는 동시에 둔화된 정부 R&D 예산 증가율을 감안해 투자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신약 개발과 제약기업을 육성하는 예산은 큰 폭으로 늘리는 대신 각 부처들이 중복 투자하던 신약 후보 물질 개발 예산은 대폭 삭감한다.

16조6000억~16조8000억원으로 추정되는 내년 정부 R&D 예산 중 가장 변동폭이 큰 분야는 단연 신약이다. 기존 신약 R&D 사업에서 149억원가량이 삭감됐다. 태양광, 로봇 등 어떤 R&D 사업보다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친 것. 내년 예산에서 투자가 가장 많이 줄어든 분야는 신약 후보물질 개발 연구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주로 연구하는 분야지만 2010년 기준 보건복지부 178억원, 지식경제부 41억원 등 다른 부처들도 상당한 투자를 집행했다. 중복 사업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복지부, 지경부 모두 기존 예산을 상당폭 줄이기로 했다. 시스템항암신약개발 사업도 올해보다 예산이 30% 줄어든다. 신약 후보물질을 기탁받아 항암제를 개발하는 게 사업의 주 목적이지만 재료 확보가 쉽지 않아지자 신약 후보물질 개발에도 나서면서 기존 사업들과 중복 가능성이 높아진 게 삭감 이유다.

글로벌 신약 개발 사업은 투자를 확대한다. FTA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해외 시장에서도 통할 신약을 개발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교과부, 복지부, 지경부 등이 모두 참여해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까지 포괄 지원하는 ‘범부처전주기신약 개발사업’ 예산을 올해 300억원에서 내년 360억원으로 20% 늘렸다. 또 혁신형 제약기업을 육성하는 80억원의 신규 예산을 편성하는 등 신약개발 임상지원 사업 예산도 내년 212억원으로 6% 확대했다.

부처별로는 복지부가 당초 1180억원의 예산을 요구했지만 200억원 가까이 부족한 938억원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기존 사업에서도 부처 중 가장 많은 60억원이 삭감됐다. 다만 올해와 비교해 5.5% 예산을 늘려 신약 R&D 주무부처의 체면을 살렸다. 지경부는 신약 R&D 예산으로 올해 대비 5.8% 줄어든 483억원을, 교과부는 2.8% 감소한 465억원의 예산을 배정받았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