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씨 "서로 소통하는 수단은 역시 사랑과 희망"

장편 '파도가…' 출간 김연수 씨
인간은 서로 온전하게 소통할 수 있을까. 소설가 김연수 씨(41·사진)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심연’이 서로에게 건너갈 수 없게 한다는 진단을 내리면서도, 그 절망 속에서 여덟 번째 장편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써냈다.

심연을 극복하고 작가가 말하는 건 희망과 사랑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관계는 대부분 실패하지만, 건너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어두운 낭떠러지 위로 ‘서로가 불가사의하게 연결되는 순간’이 우리의 정체성이자 살아가는 근거다. 소설 제목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는 작품 속 문장에서 따왔다. 이런 간절함으로 사람들은 결국 서로에게 건너간다.소설은 생후 6개월 만에 미국으로 입양된 작가 카밀라가 생모 정지은을 찾기 위해 한국의 ‘진남’에서 24년 전 과거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그 안에 얽히고설킨 수많은 인물들의 갖가지 기억이 존재한다. 카밀라를 낳을 때 정지은은 열여덟 살의 미혼모였다. 주변에 있던 인물들은 과거를 숨기거나 왜곡한다. 정지은이 다니던 진남여고의 여선생 신혜숙은 “내가 당신이라면 그런 따위의 진실은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하지만, 카밀라는 기어코 ‘진실’과 마주한다.

‘진실’은 이야기를 이끄는 중요한 동력이다. 회피하든 직면하든 진실은 인물들을 흡입해버린다. 작가에 따르면 진실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그저 ‘모순이 없는 완벽한 이야기’다. 사람들이 원치 않거나 끔찍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밝혀진다고 해서 정의가 이기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진실은 때로 잔인하지만, 완벽한 설명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진실을 추구한다.

“카밀라는 진실과 마주하면서 모순투성이던 자기 존재를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카밀라로 살아온 지난 삶을 뭉개버린 잔인한 진실이었지만 생모를 찾고 진실을 알게되면서 사라진 삶의 근거를 찾게된 거죠.” 작가는 책 말미에 ‘부디 내가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당신이 읽을 수 있기를’이라고 썼다. 그는 소설에서 카밀라의 생부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쓰지 않은 거죠. 다 쓰고 나니 안 넣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전하고 싶은 것은 전하지 않음으로써 전해진다’는 믿음이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강해져요. 독자들이 작품을 읽어가면서 제가 말하지 않은 것까지 모두 받아들일 거라고 확신합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