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원전 분위기…14조원 넣고도 상용화 '깜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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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폐위기 日 후쿠이현 '몬주 고속증식로' 가보니
核폐기물 재처리해 연료사용…'꿈의 원자로'로 불려
잇단 사고로 완공 20년 늦춰…폐기엔 270조원 필요 '속앓이'
일본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서쪽으로 3시간가량 달리면 나타나는 후쿠이(福井)현 쓰루가(敦賀)시. 시내 중심부에서 버스로 30분 더 들어가자 해안가에 돔 형태의 지붕을 얹은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때 ‘꿈의 원자로’로 불리던 몬주(文殊) 고속증식로(사진). 일본 미래 에너지정책의 근간이 되는 시설인 만큼 출입부터 까다로웠다. 드나드는 차량마다 밑바닥부터 트렁크까지 일일이 검사했고, 내부 시설 촬영도 엄격하게 제한했다.
꿈을 먹고 살던 이곳. 그러나 요즘은 존폐 위기에 몰려 속앓이를 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내 반(反)원전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 원인이다. 일본이 ‘탈원전’ 정책을 확정하는 순간, 몬주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불교에서 ‘지혜의 보살’로 통하는 문수보살에서 이름을 따온 몬주. 어느 때보다 문수보살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에너지 독립의 꿈
원자력 발전의 원료는 우라늄이다. 우라늄은 80% 이상 중동에 몰려 있는 석유와 달리 여러 지역에 골고루 매장돼 있다. 연료의 비축이나 수송에 필요한 공간과 비용도 작다. 하지만 우라늄 역시 천연자원인 만큼 매장량에는 한계가 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85년 후면 바닥이 난다.
몬주의 아이디어는 여기서 출발했다. 몬주는 다른 원자로에서 한번 사용한 핵폐기물을 재처리해 나온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섞어 원료로 쓴다. 일종의 재활용 시스템이다. 게다가 발전을 하고 나면 투입한 플루토늄보다 더 많은 플루토늄이 생성된다. 핵분열 때 나오는 빠른 중성자가 우라늄을 흡수해 플루토늄으로 변형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몬주와 같은 고속증식로가 세계적으로 보편화할 경우 현재 파악된 우라늄 매장량만으로도 2000년 이상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몬주가 꿈의 원자로로 불리는 이유다. 일본 입장에서는 에너지 해외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계기도 된다. 석유 등 화석연료는 물론 우라늄 수입량도 크게 줄일 수 있다. ◆험난한 가시밭길
1985년 착공 이후 몬주에는 지금까지 1조엔(약 14조원) 이상이 투입됐다. 지금도 하루에 4000만엔(약 5억6000만원)씩 잡아먹는다. 하루라도 빨리 완공해야 하지만 잊을 만하면 터지는 사고로 매번 발목이 잡혔다. 1995년엔 냉각재인 나트륨이 누출돼 15년간 가동이 중지됐고, 2010년엔 무게 3.3t짜리 대규모 설비가 원자로에 처박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당초 2030년으로 잡았던 상용화 시기는 2050년으로 20년 연기됐다.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 생산량이 많기 때문에 주변 국가들의 시선도 따갑다. 몬주 설립의 진짜 목적이 핵무장이라는 의혹도 있다.
일본의 높아진 반원전 분위기도 부담이다. 일본 정부가 현재 검토하고 있는 장기 에너지정책에서 원전 비율이 대폭 줄어들거나 ‘제로’가 되면 몬주 프로젝트는 폐지가 불가피하다. 몬주는 기존 원자로의 폐기물을 재활용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렇다고 쉽게 폐지를 결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몬주를 포함한 핵연료 재처리시설을 없애는 데만 19조엔(약 270조원) 이상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곤도 사토루(近藤悟) 몬주 소장은 “어차피 국가시설인 만큼 정책이 바뀌면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도 “몬주는 10~20년 뒤가 아니라 100년 후를 내다보는 사업이라는 관점에서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쓰루가=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