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30년물 국고채 투자열풍의 이면

송종현 증권부 기자 scream@hankyung.com
지난 11일 발행된 30년물 국고채에 투자한 60대 중반의 A씨를 만났다. 50억원가량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그는 삼성증권 PB센터를 통해 수억원을 30년물 국고채에 투자했다.

A씨는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앞으로 상당 기간 금리 인하(채권값 상승)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삼성증권 설명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투자위험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을 들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금융회사들이 최근 투자자들로부터 소송을 많이 당해서 손실 가능성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증권회사가 특정 상품에 대해 한 시간을 설명한다고 하면 59분은 장점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얘기하고, 손실 가능성에 대해서는 1분만 얘기하는 식”이라며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하니 제발 투자해달라고 살살 꾀는 게 뻔히 보인다”는 말을 덧붙였다.

요즘 금융권에서는 ‘슈퍼리치’들의 30년물 국고채 투자 열기가 화제다. 6개 금융사로 구성된 국채인수단이 받아간 물량 4060억원어치가 1~2일 사이에 사실상 ‘완판’(전량 판매)되자 금융권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연 3.1% 미만의 수익을 주는 이 상품이 기관이 아닌 개인고객들 사이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릴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최근 30년물 국고채 투자열기는 위험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수단에 포함된 한 금융회사 PB센터장은 “먼저 투자하고 싶다는 고객은 한 명도 없었다”며 “30년물 국고채 투자열기는 삼성증권 등 일부 회사가 개인고객을 대상으로 영업을 세게 한 게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이 센터장은 “금리가 사상 최저치 수준으로 떨어져 반등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는 상황에서 장기상품에 수억원씩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마땅한 투자대상을 찾기가 쉽지 않은 요즘과 같은 시기에 좋은 상품을 소개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친 마케팅은 후유증을 남긴다는 게 그동안의 경험이다. 2000년대 중반 ‘인사이트 펀드 열풍’과 2009년의 ‘랩 어카운트’가 그랬다. 증권사들의 과도한 마케팅으로 돈이 몰렸지만, 증시 조정으로 투자자들은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금융회사들이 항상 가슴에 새겨야 할 진리다.

송종현 증권부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