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한라공조 비스티온 계열사 인수로 현금 대부분 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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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공조에 부실계열사 15개 떠넘겨 현금 빼가기▶마켓인사이트 9월23일 오후 2시25분
한라공조에 전세계 공조 계열사를 통합하는 비스티온의 사업구조 개편안에 따라 한라공조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 대부분을 15개 계열사 인수에 소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한라공조 공개매수에 실패한 비스티온이 한라공조의 현금성 자산을 직접적으로 회수하기 위해 구조개편이란 카드를 들고 나왔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19일 비스티온 그룹은 전세계 15개 계열사를 한라공조와 합쳐 한라-비스티온 공조그룹(Halla-Visteon climate Group)을 출범시키는 사업 개편안을 발표했다. 올 상반기 한라공조를 제외한 비스티온의 나머지 공조 계열사들은 42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세계 2위 공조회사로 재탄생할 것이란 청사진과 달리 우량기업인 한라공조에 비스티온의 전세계 부실 자회사를 떠넘기는 '빛좋은 개살구'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공조 계열사 통합으로 발표된 구조개편안은 쉽게 말해 한라공조가 비스티온에 현금을 주고 나머지 15개 계열사를 사오는 것이다. 인수대가로 한라공조의 자산이나 신주를 지급하는 방법도 있지만 헤지펀드가 대주주인 비스티온의 특성상 가능성이 없다는게 인수합병(M&A)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JP모건은 한라공조를 제외한 비스티온 공조 계열사의 가치를 주당 4.56달러, 총 2억4600만달러로 분석했다. 한화로 2800억원에 달하는 액수다.
올 상반기 한라공조의 현금성 자산은 3100억원이다. 한라공조로서는 비스티온 계열사들을 사는데 현금성 자산 대부분을 써야할 판이다. IB업계 관계자는 "한라공조를 100% 자회사로 만들어 배당을 늘리려던 계획이 공개매수 실패로 무산되자 적자 자회사들을 떠넘기는 대신 한라공조의 현금을 빼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스티온과의 협상과정에서 한라공조가 계열사들을 실제 가치보다 비싸게 살 경우 한라공조가 부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비스티온의 전세계 계열사들은 공조와 전자 사업부가 합쳐진 형태다. 구조개편안에 따라 각 계열사의 공조 부문을 떼어내 한라공조에 합치게 된다. 정해진 시장가격이 없어 가격을 정하는 데 있어 대주주인 비스티온의 입김이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한 관계자는 "비스티온이 실제가치보다 높은 가격을 부른다 해도 자회사인 한라공조 경영진이 이를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한라공조와 합치는 비스티온 공조 계열사들의 부실이 심각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비스티온은 구조개편안과 함께 퇴직금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한라-비스티온 공조그룹의 출범에 앞서 비용 거품을 빼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임은영 동부증권 수석 연구위원은 “구조개편안으로 한라공조와 사실상 한 몸이 되는 상황에서 한라공조를 부실하게 만드는 것은 자해행위"이라며 “한라공조의 현금 회수보다 매각을 쉽게 하기 위해 사업구조를 개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스티온 측 관계자도 “2500만달러를 들여 세계 최대 컴프레서 설비를 평택공장에 건설하는 등 비스티온은 한라공조에 대한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며 “공조 부문의 연구개발(R&D) 센터를 한국에 통합해 한라공조를 R&D 허브로 육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