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역 이기주의 볼모로 전락한 대선

대선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각 캠프에는 온갖 민원이 폭주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후보들이 지방을 방문할 때면 지역 사업이나 민원을 대선공약에 포함시키라는 요구가 노골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대선공약에 넣어줘야 해당 후보를 찍겠다고 공공연히 압력을 가하는 식이다. 이런 움직임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각 지방자치단체를 위시해 각종 이해관계를 가진 지역 이익집단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심각한 것은 지역 언론까지 마치 당연하다는 듯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의 한 신문은 ‘가덕 신공항 대선공약 채택 촉구, 이유 알고 있나’라는 사설을 최근 실었다. 광주의 한 신문 사설 제목은 ‘제동걸린 해저터널 대선공약 포함시켜야’이다. 이 밖에 ‘K2 등 군공항 이전 대선공약으로 못 박자’ ‘고리1호 폐쇄 대선 공약 반영하라’ ‘서해안 하이웨이 대선공약 반영을’ 등과 같은 제목을 최근 지방 언론들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무슨 시위대의 플래카드를 연상케 하는 것들이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이번 대선에서 해당 지역이 얻어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특집으로 편성해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대통령이 집단이나 지역이 아닌 국가 전체의 보편적 이익을 위해 국정을 수행하는 자리임은 강조할 필요도 없다. 지역발전 민원이 대선공약 차원에서 논의될 수 없는 이유다. 국회의원 선거조차 지역 일꾼 아닌 나라 일꾼을 뽑는 것인데 대통령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총선은 물론 대선조차 지역민원과 표를 맞바꾸는 정상배들 간 거래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문제는 선거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지만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데 있다. 과거 소위 ‘3金’ 시절 정치 지도자들이 중앙정치를 볼모로 온갖 지역 민원을 내세워 정치적으로 재미를 봤었고 이것이 지역이기주의와 야합해 지금에 이른 결과다. 이번 대선에서도 모든 후보가 새 정치를 내세운다. 하지만 지역이기주의로부터 대선을 해방시키겠다는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