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멀티잡 인생' 시작됐다

권영설 편집국 미래전략실장·한경아카데미원장 yskwon@hankyung.com
중국에서 사업하는 동생이 사무실에 들렀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직원들이 아직도 일하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중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라고 했다.

일반 사업체에 근무하는 중국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서너시면 퇴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유는 또 다른 ‘일’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예전 비서의 경우는 집에서 하는 자동차수리점 일 때문에 오후 2시쯤 퇴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회사 월급이 워낙 적다보니 ‘투잡(2 job)’을 인정해주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었다.처음에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으나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보니 그런 일이 곧 생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60세 이전에 직장에서 은퇴하는데 과연 이후 살아갈 노후자금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나마 집 하나 있으면 어떻게든 굴려가며 살 수 있었는데 부동산값이 떨어지고 현금화도 어려운 시절에 가능이나 한 일일까.

한 직업만으로 노후보장 안돼

조금만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라면 간단히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할 수 있을 때 어떻게든 더 벌어야 한다.”이런 변화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1980년대 결혼한 부부만 해도 남편 혼자 벌어서 사는 경우가 많았지만 90년대 이후 부부들은 대부분 맞벌이를 전제로 한다.

평균수명이 짧은 시절에는 그나마 퇴직 후 10년 내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노후라는 개념도 없었다. 그러나 기대수명이 81세(여자 84세, 남자 77세)인 시점에서 퇴직 후 20년 넘게 살아갈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어떤 신세가 될지 모른다.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게 뭔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이 일, 저 일 하면서 많이 벌어두든가, 아니면 퇴직해서도 종류를 마다않고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주 성공적인 소수를 빼고는 60세 이전에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투잡,스리잡을 넘어 멀티잡까지 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퇴직 후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가게라도 차리려면 목돈 부담이 커서다. 부업 인정하는 풍토 생겨날까

문제는 회사가 이를 과연 용인할 수 있느냐다. 회사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 마음은 집에서 하는 식당 운영에 가 있다면 과연 어떻게 봐야 하나. 밤새 쇼핑몰 운영을 하느라 토끼눈으로 출근해 조는 사원을 그냥 볼 수 있을까. 회사가 부업이나 투잡을 용인하는 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오로지 회사에 충성만 강요하기에는 살기가 너무 빡빡하다는 냉혹한 현실이다. 일부 기업들이 주3일 근무 또는 오전근무 등만 시키고 부업이나 투잡을 용인하는 계약을 하는 일들이 곧 시작될 것이다. 그것을 계약서에 명기하고 신분은 비정규직으로 바뀌는 등 여러 변화도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계약에 충실하고 끊임없이 자기계발노력을 기울이며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새로운 직업윤리도 필요해질 것이다.한 회사에 퇴직할 때까지 열심히 충성하면 모든 것이 보장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려워지면 회사와 직원들은 새로운 규칙을 같이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아직 먼 얘기 같지만 피하기는 어려울 것만 같다. ‘중동 특수’ 같은 것이 갑자기 생기지 않는 한 말이다. 미래학자들 얘기대로 평생 30~40개의 직업을 전전하는 멀티잡의 시대가 이미 시작된 듯하다.

권영설 편집국 미래전략실장·한경아카데미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