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 안되니 대출로 버텨"…자영업 부실 '경제 뇌관' 급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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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보고서…자영업자 가계 빚, 월급쟁이 2배국내 호텔 주방장으로 일하다가 연초 인천 청라지구에 음식점을 차린 오덕환 씨(47). 시세 3억2000만원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기존 주택담보대출 9000만원에 1억5000만원을 추가로 받아 가게를 차렸다. 오씨가 재료비 인건비 등을 빼고 집에 가져 가는 돈은 월 250만원. 이 중 106만원을 대출 원리금 상환에 쓰고 있다.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 매도 생활은 늘 빠듯하다. 지난 9월에는 대부업체에서 500만원의 생활자금 대출을 추가로 받았다.
생계형 창업에 과열 경쟁…고령·저신용자 많아 위험
가구당 채무 1억원 육박…불황으로 부실 가속화
580만 자영업자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의 한 단면이다. 경기침체로 소득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경쟁자들은 연간 30만명씩 늘어나고 있다. 모자라는 소득을 빚으로 메우다보니 자영업자 대출부실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올 상반기 전체 가계부채 증가세는 다소 둔화됐지만 자영업자 부실 문제가 우리 경제의 또 다른 불안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대출의 59%가 50대 이상
자영업자의 가구당 부채규모(2011년 가계금융조사 기준)는 9500만원이다. 임금근로자(4600만원)의 두 배를 넘어선다. 소비나 저축 등에 쓸 수 있는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도 219.1%로 임금근로자(125.8%)를 크게 웃돈다.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연소득의 40%를 넘는 과다채무가구 비중 역시 14.8%로 임금근로자(8.5%)의 두 배에 육박한다. 580만 자영업자 중 85만명가량은 과다채무자인 셈이다.
김용선 한은 조기경보팀장은 “자영업자들의 부채구조가 취약한 것은 차입금 의존도가 높은 데다 생산성이 낮은 도소매 음식·숙박업종에 많이 진출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대출이 고령 저신용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연령별 부채비중에서 50대가 34%, 60세 이상이 25%로 전체의 절반 이상이 50세 이상 고연령층이다. 신용등급 5등급 이하 저신용등급자 비중도 61%를 차지한다.
자영업자는 담보가치인정비율(LTV)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상업용부동산 담보대출이 많아 LTV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LTV가 60%를 초과하는 대출자 비중(3월 말 기준)은 27.6%에 이른다. 향후 부동산 가격이 추가 하락할 경우 채무 상환 압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하우스푸어는 대부분 중산층 이상이고 잠재적인 위험군이지만 자영업자 대출 부실문제는 당장 발등의 불”이라고 지적했다.
◆대부업 이용자 252만명최근 들어 신용등급은 우량하지만 소득 수준이 낮은 가계의 대부업 대출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08년 3월 4조5000억원이던 국내 등록대부업체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8조7000억원으로 93.3% 급증했다. 이 기간 전체 가계대출 증가율(34.7%)의 세 배나 된다. 이용자 수도 252만명으로 136.8% 늘어났다. 이 중 상당 부분은 자영업자들로 파악된다.
대부업 대출은 대부분 법정 최고금리인 연 39%까지 적용되기 때문에 소득증가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부실위험이 크게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 1~3월 국내 19개 대형 대부업체 신용대출 평균금리는 38.5%였다. 김용선 팀장은 “저신용 취약계층 위주로 설계된 서민금융지원책을 신용등급은 높지만 소득이 낮은 계층에도 지원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자영업자단독으로 사업체를 운영하는 개인사업자와 임금근로자를 고용해 사업체를 운영하는 고용주를 일컫는다. 자영업자 대출에는 개인사업자대출 외에 자영업자가 받는 일반 가계대출도 포함된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