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쟁탈전, 은행이 주도권 잡았다…보험, 예상밖 고전

시장 1년새 44% 성장…톱10 중 7곳 '은행'
초저금리로 증권사 '실적 배당형'도 인기
퇴직연금 시장에서 은행권 쏠림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금리 기조가 심화하면서 증권사의 퇴직연금 계정에도 은퇴자금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반면 2005년 12월 퇴직연금 제도가 선보인 뒤 60~70%까지 점유율을 차지했던 보험업계는 30% 선으로 밀렸다. 초저금리 시대가 이어지면서 은퇴시장의 한 축을 맡게 될 퇴직연금시장에서 보험업계가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보험 지고 은행·증권 뜨고지난 10월 기준 퇴직연금 적립액은 총 56조3069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39조1826억원) 대비 43.7% 급성장했다. 올 7월부터 퇴직연금 도입이 의무화되자 이를 앞두고 각 기업들이 앞다퉈 퇴직연금 사업자를 선정한 게 주요 배경이다. 이 과정에서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금융회사 간 희비가 엇갈렸다.

생명·손해보험사들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 10월 17조8305억원으로, 전체의 31.7%에 그쳤다. 작년 10월 33.9%에 비해 2.2%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시장 1위 자리를 줄곧 지켜온 삼성생명 점유율도 같은 기간 15.8%에서 14.2%로 위축됐다.

영업력이 강한 은행들의 퇴직연금 시장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전체 17개 은행의 비중은 작년 10월 48.4%에서 올해 49.9%로 확대됐다. 작년 퇴직연금 시장 ‘톱10’에 6곳을 포함시켰던 은행권은 올해 7곳으로 늘렸다. 산업은행이 퇴직연금 적립금을 1년간 8163억원(증가율 79.1%) 끌어모으면서 삼성화재를 제치고 새로 진입한 데 따른 결과다. 전체 2위인 국민은행 점유율은 9.4%로 작년보다 0.1%포인트 높아졌다. 증권사의 퇴직연금 점유율은 18.4%로 1년 전에 비해 0.6%포인트 높아졌다. 시중금리 하락으로 실적배당형 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덕분이란 분석이다.

○“중소형사 10여곳 사업 철수”

경쟁력을 잃은 일부 금융사들은 퇴직연금 시장에서 아예 손을 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정 적립금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관리비 부담만 커지는 데다 저금리 기조 속에서 역마진이 날 우려까지 있어서다.지난 10월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이 1년 전보다 줄어든 곳은 메트라이프(806억원) 씨티은행(512억원) 동양증권(217억원) 한화손보(56억원) 동부생명(9억원) 현대라이프(7억원) 등 10여곳에 달한다. 적립금이 감소한 것은 신규 영업은 고사하고 기존 고객까지 이탈했다는 의미다. 해당 금융사들은 퇴직연금 사업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한 중소형 보험사 관계자는 “퇴직연금 시장이 대형사 위주로 재편되고 있어 우리로선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라며 “몇 달 전부터 사실상 신규 영업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특히 손보사 중에서 적립금이 5000억원을 넘은 곳은 삼성화재(1조7662억원)와 LIG손보(1조962억원) 등 두 곳에 불과하다.

은행계열 보험·증권사의 설 자리도 좁은 편이다. 금융그룹 차원에서 은행 쪽에 영업력을 집중하고 있어서다. KDB생명 신한생명 IBK연금 하나대투증권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아비바생명과 하나HSBC 등은 처음부터 퇴직연금 시장에 진출하지 않았다.○급여 사전확정형(DB)이 대세

금융권에 퇴직금을 맡긴 기업 중에선 확정급여(DB)형을 선택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DB형은 근로자가 은퇴할 때 받을 퇴직급여를 근무기간과 평균 임금에 따라 사전에 확정하는 방식이다. 금융사가 당초 약속대로 일정 수익률을 보장한다. 보험사의 DB형 비중은 84.5(생보사)~87.3%(손보사)에 달했다. 증권사 역시 75.8%로 높았다. 은행권의 DB형 가입 비중은 62.3%였다. 반면 퇴직연금 가입자가 직접 적립금을 운용하고 퇴직할 때 원금과 운용 수익을 받을 수 있는 확정기여(DC)형 가입자는 10~20%에 불과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