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에 굴복한 日銀…물가상승률 2%·엔高 저지 수용

총선 후 총재와 첫 회동…내달 '금융완화 구체안' 확정
일본 중앙은행(일본은행)이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종전 1%에서 2%로 올리기로 방침을 정했다. ‘무제한 금융완화’를 주장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유민주당 총재(사진)의 줄기찬 압박에 백기를 든 것이다. 그동안 일본은행은 자민당의 공격적 인플레이션 정책에 강하게 반발해왔다.

아사히신문은 18일 “일본은행이 인플레이션 목표를 상향 조정하는 방향으로 정부와 정책 협정을 체결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행은 19~20일 열리는 금융정책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고, 내년 1월 열리는 금융정책회의에서 최종 결론을 내릴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재는 ‘물가상승률 2%’와 ‘명목성장률 3%’를 공약으로 내걸고 줄곧 일본은행의 적극적인 협조를 촉구했다. 아베 총재는 자민당의 압승이 확정된 지난 17일 기자회견에서 “선거를 통해 경기를 빨리 살려달라는 민심을 확인했다”며 “일본은행 정책입안자들이 이번 선거 결과를 잘 이해하고 적절한 결정을 내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금융완화에 미온적인 일본은행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아베 총재의 압박은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18일엔 공식 회동을 통해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일본은행 총재와 직접 얼굴을 마주했다. 아베 총재는 시라카와 총재와의 회담이 끝난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총선 공약으로 제시한) 2%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일본은행과 정책 협약을 맺고 싶다는 뜻을 시라카와 총재에게 전했다”고 말했다. 반면 시라카와 총재는 “의례적인 인사 차원이었다”고 말을 아꼈다.

지금까지 일본은행은 자민당의 금융완화 정책에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시라카와 총재는 “과도한 인플레이션 정책은 오히려 일본 경제에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미 정책금리가 제로 수준인 데다, 그동안 물가상승률 1%를 목표로 지속적으로 돈을 풀었기 때문에 시중에 자금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는 판단이다.일본은행이 금융완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국채매입기금은 2010년 10월 35조엔 규모로 조성된 이후 총 일곱 차례 증액됐다. 올 들어서도 2월과 4월에 각각 10조엔과 5조엔 증가했고, 9월과 10월에는 10조엔과 11조엔씩 늘었다. 통화정책만으로는 디플레이션 극복이 어렵다는 것도 일본은행이 금융완화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다. 정부의 구조 개혁과 규제 완화가 병행되지 않고서는 자칫 큰 효과도 없이 국가재정만 악화시킬 뿐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자민당이 총선에서 예상외의 압승을 거두면서 일본은행의 분위기도 바뀌기 시작했다. 자민당이 속전속결로 일본은행을 굴복시키긴 했지만 문제는 남는다. 정권 교체에 따라 중앙은행의 정책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일본 국채 매도로 금리가 급등하면 그리스처럼 재정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