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만난 모교 총장] "中企 가면 더 빨리 성장할텐데…왜 대기업·공무원만 고집하나"

이건 서울시립대 총장·유태승 휘일 회장

다분야 종합해 해결책 제시하는 통섭형 인재 미래형 리더로 주목
스펙보다 폭넓은 지식 쌓아야

어떤 삶 살지 고민 후 대학 진학을
실패 두려워않는 도전자세 갖추고 美·日보다 동남아서 기회 찾아야

“기업이 직원에게 바라는 역량은 인성입니다. 건강과 성실, 그리고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우선입니다. 스펙은 그 다음이죠. 조건만 보는 결혼이 행복할 수 있습니까.”(유태승 휘일 회장)

“대학이 키워줘야 할 자질도 바로 그런 인성입니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이 성공의 밑바탕이 되죠.”(이건 서울시립대 총장)이 총장은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줄곧 인성 개발을 위한 교육 시스템 개혁에 집중해 왔다. 교양 과목을 문제 해결 과정으로 개편해 도전정신과 자신감, 창의력 등이 개발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총장과 서울시립대는 이번 ‘CEO가 만난 모교 총장’ 자리에 30년 가까이 금형 개발에 전념, 연매출 100억원대의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키워낸 기업가 유태승 휘일 회장을 초대했다. 지난 21일 서울 전농동 서울시립대 총장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대학생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인성’이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

사회/ 허원순 지식사회부장▷사회=‘융합형 인재’ 두 분을 모셨습니다.

▷이건 총장=스스로 인재라고 하긴 좀 쑥스럽습니다만….(웃음) 석사까지 수학으로 받은 덕에 다른 시각으로 사회 문제를 보는 시각은 생긴 것 같습니다. 처음 사회학을 할 때 ‘왜 카를 마르크스를 배울까’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사회학만 한 사람들은 그런 의문을 갖기 어려웠겠죠. 앞으로 사회는 방대한 지식과 사상을 종합할 줄 아는 인재가 더욱 중요해질 텐데요, 그런 면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본 사람이 두각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대학생도 너무 전공만 파는 것보다 다양한 과목을 들어보면 도움이 될 겁니다. 전통적인 카리스마형 리더보다는 여러 사회 분야의 이야기를 듣고 종합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통섭형 리더가 필요한데 새 대통령도 그런 리더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유태승 회장=‘생활의 발견’을 쓴 중국의 작가 린위탕(林語堂)의 터널 이야기가 융합형 인재를 잘 표현하는 말인 듯합니다. ‘산 하나를 사이에 둔 두 마을이 왕래하려고 터널을 뚫었다. 정확히 계측했다면 하나만 뚫어도 될 걸 대충 해서 두 개를 파고 말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왕래가 많아지니 두 개 뚫은 게 오히려 좋았다.’ 여러 가지 학문이나 재능을 익히는 게 처음에는 어렵고 효율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해 놓으면 언젠가는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사회=청년실업, 진단을 부탁드립니다.

▷이 총장=중소기업에 아무리 지원을 많이 해줘도 대학 나온 젊은이들이 기쁘게 가진 않습니다. 정부가 청년 인턴사업에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었지만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청년실업을 타개하기 위한 쉬운 방법은 없습니다. 대학생이 가고 싶어하는 대기업은 문이 좁고, 중소기업은 인력이 없어 난리인 미스매치가 청년실업의 원인이라고 하죠. 그 미스매치가 나타난 이유는 뭘까요. 대학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1990년대부터 정치권이 나서서 규제를 풀면서 대학이 우후죽순식으로 들어섰죠. 대학 가기 쉬워진 마당에 부모들은 자식을 대학에 보내지 못하면 죄인처럼 인식될 상황까지 돼버렸습니다.

▷유 회장=반면 대학생들이 취업할 일자리는 많지 않습니다. 중소기업은 외국인 노동자로 빈 자리를 채울 수밖에 없죠. 우리 회사는 충남 아산에 본사가 있고 서울 가산동에 연구소가 있습니다. 아산은 서울에서 1시간이면 가는 거리고 기숙사나 각종 복지도 대기업 못지않게 해주는데도 직원들 누구나 서울에서 근무하고 싶어합니다. 단순 생산직이 아니라 엔지니어들도 그렇습니다. 지방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게 대학졸업생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이 총장=회장님 말씀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정답은 대학을 꼭 가야 하느냐에 대한 사회의 전반적 인식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고등학교만 나와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은 반면 대학을 졸업해야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대학을 너도나도 가죠. 그런 사람 중 상당수는 대학에서 4년을 허비하고 졸업해서도 청년백수로 또 몇 년을 허송세월로 보내죠. 개인이나 가정, 나아가 사회적으로 엄청난 손실입니다. 중·고교 자녀를 둔 학부모부터 실리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자기 자식이 대학에 간 다음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죠. 학생들도 진지하게 자신이 어떤 종류의 삶을 살 것인지 생각해 본 후 대학에 진학할 것인지를 결정했으면 합니다. 대학은 진정한 인생을 준비하는 단계입니다. 결코 인생의 목표가 돼선 안 됩니다.

▷유 회장=젊은이들의 도전정신도 필요합니다. 제가 ROTC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던 1978년만 해도 무역회사를 최고로 쳤습니다. 서울시립대에 입학할 때 시청 공무원이 되겠다고 서약하면 장학금까지 줬습니다. 그만큼 공무원은 인기가 없었죠. 경제가 불안하다고 안정만 추구하다 보니 지나치게 공무원이나 대기업만 찾는 것 같아요. 지금 제 또래 친구들은 거의 하는 일 없이 퇴직금만 까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제 사업을 하니까 지금도 일할 수 있죠. 일단 해보자는 정신으로 도전했던 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잘한 일인 것 같아요. 젊은이들도 도전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합니다.

▷사회=중소기업 인력 수급 어려우시죠.

▷유 회장=1970년대만 해도 ROTC를 하면 대기업 취업은 보장돼 있었습니다. 제가 대기업에 갔다면 지금처럼 사업을 하진 못했을 거예요. 중소기업에 들어가 보니 기획이나 영업은 물론 자재 구매에다 심지어 거래처 수금까지 다 하게 됐습니다. 그때 한 경험이 나중에 기업을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대기업에 들어가면 그런 경험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몇 년 전 우리 회사에 전문대를 졸업하고 22세에 입사한 직원이 있습니다. 일을 시켜 보니 잘해서 3년도 안 돼 대리를 달아줬죠. 또 5년차에 과장을 시켰습니다. 작은 회사니까 사장이 일 잘하는 직원을 알아보는 거죠. 스스로 유능하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중소기업을 선택하는 것도 좋습니다.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이 총장=중기 인력난 해소 역시 인식을 바꾸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회장님 말씀대로 중소기업으로 가는 게 한 사람과 기업, 사회의 성장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청년들이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또 교육기관은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의 미래가 발전한다는 것을 강조해줘야 하고요. 그런 측면에서 서울시립대는 국제화의 방향도 바꿨습니다. 흔히 글로벌 또는 국제화라고 하면 ‘미국과 유럽을 따라잡고 일본을 이기자’ 정도로 생각하죠. 우리는 학생들의 동남아 진출을 적극 권장합니다. 자신의 미래를 현실적으로 계획하도록 하는 것이죠. 미국에 가봐야 일자리 찾기 쉽습니까. 동남아에 가면 한국 인재들 서로 데려가려고 합니다. 학생들도 처음에는 꺼리지만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같은 지역에 인턴으로 갔다 오면 생각이 바뀝니다.

▷사회=교육도 많이 바뀌어야겠습니다.

▷이 총장=자신에게 정말 좋은 게 무엇인지 학생들이 스스로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대학 졸업장이라는 타이틀보다 자신의 능력이 중요하다는 걸 제대로 인식하도록 해야 하죠. 대학에선 특히 실패를 경험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대하면서 문제점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아 실제로 적용하는 과정을 무수하게 거칩니다. 대학은 학생들이 그 과정을 미리 겪으면서 실패해 보고 거기서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합니다. 서울시립대는 모든 과목에 이런 문제기반학습, 프로젝트기반학습 과정을 넣어가고 있는데요, 학생들의 창의성이나 리포트 작성 능력, 발표력 등이 향상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 회장=사회는 경쟁입니다. 경쟁 없이 잘사는 사회를 주장하는 사람도 물론 있겠죠. 하지만 경쟁은 ‘내 가족을 어떻게 하면 잘살게 할 수 있을까’ ‘우리 회사 직원들 월급 더 주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인간의 소박한 본성입니다. 그런 면에서 실패를 통해 배우도록 하는 교육은 정말 중요합니다. 또 대학이나 다른 교육기관에 바라는 것은 인성교육입니다. 인성만 있다면 일하면서 필요한 능력은 직장에서 충분히 가르칠 수 있습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 이건 총장

이건 서울시립대 총장(58)은 경기고와 서울대 수학과를 나왔다. 미국 럿거스대에서 수학 석사 학위를, 하버드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로 강단에 선 뒤 2001년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로 자리를 옮겼다. 작년 5월 7대 총장에 취임했다. 한국조사연구학회장, 한국사회학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 유태승 회장

유태승 휘일 회장(60)은 유한공고와 서울시립대 환경원예학과를 나왔다. ROTC로 군생활을 마친 후 직장생활을 하다 1984년 휘일의 모태가 된 금형공장을 인수해 자동차 부품 기업으로 키웠다. 휘일은 국내 자동차 에어컨 내열관 시장에서 점유율 100%, 머플러(소음기)는 80%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