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5060세대, 이제 선거 무용담은 그만하시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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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1주일이 지나도록 5060세대의 선거 무용담이 한창이다. 장·노년층이 모이는 자리마다 50대의 89.9% 투표율, 첫 과반 대통령, 야당의 패인 등에 대한 분석과 관전평이 쏟아진다. ‘우리가 이 나라의 가치를 지켜냈다’는 환호와 자부심이 가득하다. 이들의 환호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더구나 모두가 분기탱천했고 실로 아슬아슬했던 승부의 뒤끝이다.
5060의 표심은 ‘불만’보다는 ‘불안’이 훨씬 컸다. 종북 후보의 독설이거나, 안보·국방의 불안이거나, 산업화에 대한 폄하이거나, 은퇴세대의 개인적 불안일 것이다. 이런 세대공감이 5060을 투표소로, 투표소로 향하게 만든 폭발하는 힘의 근원이 됐다. 그나마의 세상경험이 이토록 세대 전체로 번지며 공감을 엮어낸 적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5060세대는 선거 무용담을 이쯤에서 끝내시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진영논리에 따라 ‘우리편이 이겼다’고 웃고만 있을 때도 아니다.대선에 가려졌던 경기불황의 엄혹한 현실은 한파보다 더 춥게 다가오고 있다. 덜 불안한 후보가 당선됐다 해서 구조적 불안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초반의 열띤 기대가 실망과 분노로 바뀌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보다는 ‘1469만표의 불만’을 어떻게 녹여낼지 고민이 필요한 때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론은 실로 철없는 아이들의 촌극이라 하겠지만 세대전쟁은 더욱 그악스런 형태로 언제고 분출될 수 있다.
5060 유권자는 전체의 40.0%로 2030(38.2%)보다 많아졌다. 그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5060이 뭉치면 언제든 이긴다는 식이라면 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횡포와 다를 바 없다. 초고령국가인 일본이 바로 그런 식으로 포퓰리즘 사회로 치달았다. 부디 정치와 결혼하지 말고 정신 바짝 차려야 할 연말이다. 그래야 사회가 진지해지고 정치가 합리적으로 바뀐다. 2030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도, 그들의 실망이 길어져서도 곤란하다. 5060이 부모라면 2030은 자식들이다. 종북은 사회로부터 격리해내야 할 것이지만 다음 세대는 끌어안아야 마땅하다. 그런 정신이라야 박근혜 정부의 성공도 만들어낸다.
5060의 표심은 ‘불만’보다는 ‘불안’이 훨씬 컸다. 종북 후보의 독설이거나, 안보·국방의 불안이거나, 산업화에 대한 폄하이거나, 은퇴세대의 개인적 불안일 것이다. 이런 세대공감이 5060을 투표소로, 투표소로 향하게 만든 폭발하는 힘의 근원이 됐다. 그나마의 세상경험이 이토록 세대 전체로 번지며 공감을 엮어낸 적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5060세대는 선거 무용담을 이쯤에서 끝내시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진영논리에 따라 ‘우리편이 이겼다’고 웃고만 있을 때도 아니다.대선에 가려졌던 경기불황의 엄혹한 현실은 한파보다 더 춥게 다가오고 있다. 덜 불안한 후보가 당선됐다 해서 구조적 불안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초반의 열띤 기대가 실망과 분노로 바뀌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보다는 ‘1469만표의 불만’을 어떻게 녹여낼지 고민이 필요한 때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론은 실로 철없는 아이들의 촌극이라 하겠지만 세대전쟁은 더욱 그악스런 형태로 언제고 분출될 수 있다.
5060 유권자는 전체의 40.0%로 2030(38.2%)보다 많아졌다. 그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5060이 뭉치면 언제든 이긴다는 식이라면 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횡포와 다를 바 없다. 초고령국가인 일본이 바로 그런 식으로 포퓰리즘 사회로 치달았다. 부디 정치와 결혼하지 말고 정신 바짝 차려야 할 연말이다. 그래야 사회가 진지해지고 정치가 합리적으로 바뀐다. 2030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도, 그들의 실망이 길어져서도 곤란하다. 5060이 부모라면 2030은 자식들이다. 종북은 사회로부터 격리해내야 할 것이지만 다음 세대는 끌어안아야 마땅하다. 그런 정신이라야 박근혜 정부의 성공도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