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금리인하의 '불편한 진실'

박신영 금융부 기자 nyusos@hankyung.com
“요즘 대출 창구에서 그냥 돌려보내는 중소기업들이 적지 않습니다. 중기 대출 금리 상한선이 낮아지다 보니 신용도와 담보 등 상환 능력을 더 꼼꼼히 따져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24일 만난 시중은행의 고위관계자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최근 들어 취약한 중소기업들에 신규대출을 해주라는 금융당국의 압박과 사회분위기가 거세지고 있지만 현재 대출 금리 수준으로는 쉽게 돈을 빌려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해 은행권의 중기대출 금리상한선은 평균 연 17~18%에서 연 14% 수준까지 떨어졌다. 기업은행은 올 들어 연 9.5%로 금리상한선을 낮췄다. 기존에 연 17~18%면 돈을 빌릴 수 있었던 기업들이 은행 거래를 하지 못하는 현상이 빚어졌다.

이런 사례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부산 녹산동에 있는 A사는 플라스틱 사출로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기업이다. 업계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 회사는 작년 11월 기술개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은행 문을 두드렸지만 거절당했다. 낮아진 대출 금리 상한선이 은행 거래 자체를 막는 부작용을 빚은 것이다. 해당 은행 거래 지점장은 “최고금리가 낮아져 위험 관리가 불가피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 기업은 어쩔 수 없이 최고 금리가 연 17%로 상대적으로 높은 산업은행에서 어렵사리 자금을 융통했다. 경남 진주에서 발전용 보일러를 만드는 B사도 같은 이유에서 거래은행을 바꿔 운전자금 5억원을 마련했다.

이 같은 현상은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중소기업대출 중에서 금리가 연 8% 이상에 해당하는 대출비중이 2011년 11월 5.5% 수준에서 2012년 11월에는 2.8%까지 내려왔다. 다른 시중은행의 리스크관리 담당 임원은 “금리 상한선이 내려가다보니 은행들이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에는 다른 은행을 소개하는 ‘폭탄 돌리기’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추경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최근 “은행들이 경제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우량기업 중심으로 자금지원을 늘리는데 이런 현상은 시급히 고쳐져야 한다”고 질타한 것도 이 같은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대출 금리를 낮추는 것도 좋지만 중소기업이 은행거래를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안도 고민해봐야 할 때다.

박신영 금융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