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 살아남은 천재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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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의 예능은 놀이다. 그는 MBC <무한도전>처럼 출연자들을 모아놓고 재미있게 노는 것을 즐긴다. 강호동의 예능은 승부다. 그는 MBC <무릎 팍 도사>처럼 출연자들과 밀당하듯 경쟁하고 협상하며 승리를 끌어낸다. 그리고, 이경규의 예능은 현실이다. 그는 SBS <라인업>에서 자신의 ‘라인’을 소재로 삼았고, 녹화가 길어지면 퇴근이 늦어진다며 버럭했다. 이경규의 전성기가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의 ‘몰래카메라’로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중이 연예인들의 실제 모습을 궁금해하기 시작할 때 이경규는 연예인도 보통의 사람처럼 우스꽝스럽고 약한 일면이 있음을 파헤쳤고, 반대로 ‘양심냉장고’를 주던 ‘이경규가 간다’처럼 세상에는 평범한 현실을 사는 자신보다 좀 더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줬다. 대본을 바탕으로한 콩트의 전성시대가 끝나갈 때 쯤, 이경규는 보통 사람들의 리얼한 사고방식을 예능으로 끌어들였다. <무한도전>이 있기 전에 <일밤>의 ‘대단한 도전’에서 어려운 미션이 떨어지면 PD에게 한 잔 하자는 손짓으로 로비를 하던 이경규가 있었다.
방송 분량이 필요하면 후배들을 윽박지르고, ‘날방송’(날로 먹는 방송)이 가능하다면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 능력이 좋아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알고, 잘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아는 사람. 다시 말해 직장인. 이경규가 한창이던 그 때 최고의 스타들은 가수이거나 배우였다. 그의 주무대였던 MBC에서 <방송대상>의 일부로 시상됐던 예능이 <방송연예대상>이라는 독자적인 시상식으로 자리를 굳힌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신나게 웃긴다고 누군가 제대로된 기록을 남겨주지도 않았다. 이경규가 영화 <복수혈전>의 실패 뒤에도 영화 제작을 계속 시도한 것도 “영화는 무엇인가 남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송사는 시청률로 끊임없이 예능인의 실적을 평가한다. 살아 남으려면 작가처럼 아이템을 내고, PD처럼 현장 분위기를 잡아가야 했다. 그 과정에서 악역이 됐고, 영향력이 늘어가는 만큼 ‘꼰대’ 같다는 말을 듣는 것을 피해갈 수 없었다. 생존에 대한 절실함으로 부활하다
2000년대 후반 이경규의 부진은 한 예능인의 실패라기 보다는 차라리 아버지 세대의 좌절이었다. 자신의 직업이 꿈이 아닐지라도 열심히 했고,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엇을 추구할 동력은 없었다. 그 때 이경규의 예능을 보며 예능인의 꿈을 키운 유재석은 예능에 놀이처럼 몰입하며 <무한도전>의 장기 프로젝트들을 수행했다. 씨름판에서 건너와 죽으나 사나 승부를 봐야 했던 강호동은 한겨울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이경규에게 예능은 명예보다는 생존이, 성취감보다는 책임감이 앞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예능은 생존을 넘어 꿈과 도전을 기대할 수 있는 무대가 됐다. 그리고, 예능은 두 사람과 함께 드디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직업 안에서 꿈을 이룰 수 없었던 시대의 천재는 꿈꾸는 것이 가능한 시대의 주인공들에게 밀려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 스스로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던 <일밤>에서의 퇴출 후, 이경규에게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KBS <해피선데이>의 ‘남자의 자격’에서 마라톤을 했을 때다. 제작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경규는 다리를 절어가면서까지 마라톤을 완주했다. 그는 50대의 남자가, 프로그램의 수장이, ‘날방송’을 좋아하던 이경규가 뛰어야 방송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알았다. 몰락을 맛본 사람이 생존에 대한 절실함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했다. 그리고, ‘남자의 자격’은 어느새 그에게 예능에서 무엇인가 남길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도록 했다. 여러 도전을 하며 운동을 하니 건강해졌고, 여러 과제에 도전하면서 “방송 끝나면 술만 마시던” 생활에 변화가 왔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에서 나온 꼬꼬면은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예능에 의해 규정됐던 그의 삶은 다시 예능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다. 이 예능의 아버지는 그렇게 예능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남자의 자격’에서 방송한 특강을 통해 “인생의 짐을 지고 살다보면 결국 무언가 얻게 된다”는 말과 함께. 다시, 이경규를 주목하는 이유
이경규가 활동 31년째에 최우수상을 받은 SBS <연예대상>에서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롱런이나 재기의 문제가 아니다. 그가 최우수상을 받게 한 SBS <힐링캠프 - 기쁘지 아니한가>(이하 <힐링캠프>)에서 이경규는 전처럼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는 최대한 많이 듣는다. 하지만 그는 타블로에게 ‘타진요’ 사건 이후 생계가 어렵지 않았느냐고 물어본다. 태도는 변하되, 생활과 현실에 대한 관심은 놓지 않는다. 그것은 유재석의 배려와도, 강호동의 공세와도 다른 이경규의 예능이다. 이경규가 다시 강호동과 유재석의 대중성을 넘어서기란 쉽지 않겠지만, 유재석과 강호동 역시 이경규만의 영역을 소화할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치열한 생존과 현실에 대한 감각으로 결국 새로운 시대에 도착했다. 그리고 신동엽이 사회를 보고 강호동이 참석한 그 시상식에서 유재석, 김병만과 대상을 경쟁하며 그들 앞에서 최우수상 수상 소감을 말했다.
자신의 본질은 잃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알려준 충고를 받아들였고, 살아남기 위해 일하는 방식도 바꿨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다시 이경규를 주목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더 이상 후배들만큼 뛸 체력은 남아있지 않다.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러나, 대신 이경규는 자신이 지던 짐을 반쯤 내리고 꿈을 위해 뛸 수 있는 나이가 됐고, 그 꿈을 자신의 일 속에서 해낼 시대가 올 때까지 살아남았다. 그는 이제 세 번째 영화에 도전하고, ‘남자의 자격’을 통해 철인 3종 경기에 나선다. 생존이 곧 꿈이자 꿈을 위한 철학으로 완성되는 나이. 그가 앞으로 보여줄 몇 년은 한 사람의 직업과 인생과 철학이 하나로 나올 수 있는 시절일 것이다. 어떤 아버지는 ‘꼰대’로만 늙어갔다. 어떤 아버지는 인생의 목적을 잃은 채 사라졌다. 그러나, 어떤 아버지는 치열하게 살아남았다. 그렇게 이경규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그가 살아남는 한. 아니, 살아있는 한.
강명석 기자 two@tenasia.co.kr
방송 분량이 필요하면 후배들을 윽박지르고, ‘날방송’(날로 먹는 방송)이 가능하다면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 능력이 좋아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알고, 잘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아는 사람. 다시 말해 직장인. 이경규가 한창이던 그 때 최고의 스타들은 가수이거나 배우였다. 그의 주무대였던 MBC에서 <방송대상>의 일부로 시상됐던 예능이 <방송연예대상>이라는 독자적인 시상식으로 자리를 굳힌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신나게 웃긴다고 누군가 제대로된 기록을 남겨주지도 않았다. 이경규가 영화 <복수혈전>의 실패 뒤에도 영화 제작을 계속 시도한 것도 “영화는 무엇인가 남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송사는 시청률로 끊임없이 예능인의 실적을 평가한다. 살아 남으려면 작가처럼 아이템을 내고, PD처럼 현장 분위기를 잡아가야 했다. 그 과정에서 악역이 됐고, 영향력이 늘어가는 만큼 ‘꼰대’ 같다는 말을 듣는 것을 피해갈 수 없었다. 생존에 대한 절실함으로 부활하다
2000년대 후반 이경규의 부진은 한 예능인의 실패라기 보다는 차라리 아버지 세대의 좌절이었다. 자신의 직업이 꿈이 아닐지라도 열심히 했고,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엇을 추구할 동력은 없었다. 그 때 이경규의 예능을 보며 예능인의 꿈을 키운 유재석은 예능에 놀이처럼 몰입하며 <무한도전>의 장기 프로젝트들을 수행했다. 씨름판에서 건너와 죽으나 사나 승부를 봐야 했던 강호동은 한겨울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이경규에게 예능은 명예보다는 생존이, 성취감보다는 책임감이 앞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예능은 생존을 넘어 꿈과 도전을 기대할 수 있는 무대가 됐다. 그리고, 예능은 두 사람과 함께 드디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직업 안에서 꿈을 이룰 수 없었던 시대의 천재는 꿈꾸는 것이 가능한 시대의 주인공들에게 밀려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 스스로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던 <일밤>에서의 퇴출 후, 이경규에게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KBS <해피선데이>의 ‘남자의 자격’에서 마라톤을 했을 때다. 제작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경규는 다리를 절어가면서까지 마라톤을 완주했다. 그는 50대의 남자가, 프로그램의 수장이, ‘날방송’을 좋아하던 이경규가 뛰어야 방송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알았다. 몰락을 맛본 사람이 생존에 대한 절실함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했다. 그리고, ‘남자의 자격’은 어느새 그에게 예능에서 무엇인가 남길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도록 했다. 여러 도전을 하며 운동을 하니 건강해졌고, 여러 과제에 도전하면서 “방송 끝나면 술만 마시던” 생활에 변화가 왔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에서 나온 꼬꼬면은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예능에 의해 규정됐던 그의 삶은 다시 예능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다. 이 예능의 아버지는 그렇게 예능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남자의 자격’에서 방송한 특강을 통해 “인생의 짐을 지고 살다보면 결국 무언가 얻게 된다”는 말과 함께. 다시, 이경규를 주목하는 이유
이경규가 활동 31년째에 최우수상을 받은 SBS <연예대상>에서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롱런이나 재기의 문제가 아니다. 그가 최우수상을 받게 한 SBS <힐링캠프 - 기쁘지 아니한가>(이하 <힐링캠프>)에서 이경규는 전처럼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는 최대한 많이 듣는다. 하지만 그는 타블로에게 ‘타진요’ 사건 이후 생계가 어렵지 않았느냐고 물어본다. 태도는 변하되, 생활과 현실에 대한 관심은 놓지 않는다. 그것은 유재석의 배려와도, 강호동의 공세와도 다른 이경규의 예능이다. 이경규가 다시 강호동과 유재석의 대중성을 넘어서기란 쉽지 않겠지만, 유재석과 강호동 역시 이경규만의 영역을 소화할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치열한 생존과 현실에 대한 감각으로 결국 새로운 시대에 도착했다. 그리고 신동엽이 사회를 보고 강호동이 참석한 그 시상식에서 유재석, 김병만과 대상을 경쟁하며 그들 앞에서 최우수상 수상 소감을 말했다.
자신의 본질은 잃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알려준 충고를 받아들였고, 살아남기 위해 일하는 방식도 바꿨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다시 이경규를 주목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더 이상 후배들만큼 뛸 체력은 남아있지 않다.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러나, 대신 이경규는 자신이 지던 짐을 반쯤 내리고 꿈을 위해 뛸 수 있는 나이가 됐고, 그 꿈을 자신의 일 속에서 해낼 시대가 올 때까지 살아남았다. 그는 이제 세 번째 영화에 도전하고, ‘남자의 자격’을 통해 철인 3종 경기에 나선다. 생존이 곧 꿈이자 꿈을 위한 철학으로 완성되는 나이. 그가 앞으로 보여줄 몇 년은 한 사람의 직업과 인생과 철학이 하나로 나올 수 있는 시절일 것이다. 어떤 아버지는 ‘꼰대’로만 늙어갔다. 어떤 아버지는 인생의 목적을 잃은 채 사라졌다. 그러나, 어떤 아버지는 치열하게 살아남았다. 그렇게 이경규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그가 살아남는 한. 아니, 살아있는 한.
강명석 기자 two@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