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제대로 복지정책 펼치려면 '세제개혁' 먼저"

한국경제학회 학술대회 - 새 정부의 정책방향과 과제

복지공약비용 추정 낙관적…세배는 더 들 듯
지하경제 양성화·비과세 감면으론 재원충당 안돼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전면적인 세제개편이 필요합니다.”(이경태 고려대 석좌교수)

“5년 임기만 생각하지 말고 향후 수십년간 이어갈 수 있는 복지정책의 초석을 놓아야 합니다.”(전주성 이화여대 교수) 국내 대표 경제학자들이 22일 서울 고려대에서 열린 ‘한국경제학회 공동학술대회’에서 한국 복지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놓고 다양한 의견들을 쏟아냈다. ‘새 정부의 정책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는 이경태 교수의 ‘근혜노믹스의 이해와 성공 조건’이란 제목의 주제발표에 이어 김대환 인하대 교수, 이지순 서울대 교수, 전주성 교수, 조윤제 서강대 교수가 토론을 벌였다.

◆“복지비용 추정 너무 낙관적”

이날 회의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복지 정책이었다. 경제학자들은 한결같이 재검토 및 수정을 요구했다. 이경태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공약 실현을 위해 필요한 총 소요재원 중 76%인 71조9000억원이 복지와 교육 부문”이라며 “경제 정책이 복지에 과도하게 치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도 복지 공약 비용 추정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비판했다. 당선인 측은 복지공약 비용을 5년간 135조원,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추산했으나 보건사회연구원은 그 3배인 GDP의 6%까지 예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문제는 늘어나는 복지 예산을 확보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지난 21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도 새 정부 국정 과제를 발표하면서 뚜렷한 복지 재원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전 교수는 “단순히 세출 조정이나 조세 특혜 및 지하경제 축소로 재원을 조성한다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이날 경제학자들은 결국 세금을 더 걷는 세제 개혁 없이는 복지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 교수는 “부자 증세만으로는 조세 저항이 만만찮고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크다”며 “보편적인 증세 없이는 복지 정책 추진이 힘들다”고 말했다. 전 교수도 “부가세율 몇% 올리는 정도의 주먹구구식 증세는 상당한 비효율과 불공평을 초래할 수 있다”며 재정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과 세제 개혁의 청사진 마련을 주문했다.

◆“약자 키우는 것이 경제민주화”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해서도 좀 더 큰 그림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학자들은 인수위 차기 국정 과제에서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는 빠졌지만 관련 정책은 공약대로 추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지순 교수는 “경제민주화는 약자를 키우는 것이지 강자를 억지로 끌어내리는 것이 되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경태 교수는 “경제 민주화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공정 경쟁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경쟁 자체를 제약하는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공정 경쟁 환경이 조성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자리 정책은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이와 관련된 미스매치(구인구직 불일치) 문제를 푸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대환 교수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시장은 유연화하면서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보호·지원하는 차등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투자 어떻게 살릴 것인가”조윤제 교수는 최근 원화 강세가 차기 정부 경제정책에 부담을 줄 것을 우려했다. 그는 “최근 원화 강세는 실업확대나 구조조정 등 산업 구조개편을 촉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박 당선인이 내세우는 일자리 및 중소기업 보호 확대 정책과 상충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어 “경기 위축이 장기화되면 급증한 가계부채가 경제 운용의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가계부채가 심각한 금융시스템 문제로 확대되지 않도록 적절한 위기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근혜노믹스’가 놓치고 있는 정책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이경태 교수는 기업의 투자 촉진 정책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국내 설비 투자의 80% 이상을 대기업이 담당했을 정도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만 이들의 투자심리를 되살릴 수 있는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주완/서정환 기자 kjwan@hankyung.com